중상주의 경제학파의 개척자 유수원…③ 봉건체제와 다른 경제원리·직업윤리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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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주의 경제학파의 개척자 유수원…③ 봉건체제와 다른 경제원리·직업윤리 전파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7.27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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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맬서스 『인구론』 맹점 60년 앞서 비판한 재야 경제학자
▲ 시장가는 길(歸市圖), 김득신(1754~1822), 지본담채, 33.5x27.5cm, 개인 소장.

[조선의 경제학자들] 맬서스 『인구론』 맹점 60년 앞서 비판한 재야 경제학자

[한정주=역사평론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개인의 능력·특성에 따른 전문적 분업화는 명백하게 자본주의 경제의 원리이자 직업윤리이며 도덕이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아버지가 양반이면 자식도 양반이고, 아버지가 백정이면 자식도 백정이고, 아버지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였던 것이 경제 원리이자 직업윤리였고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나 맹자와 같은 사람도 ‘제왕은 제왕답고, 제후는 제후답고, 대부는 대부답고, 백성은 백성다운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수원은 사농공상에 따른 신분 차별이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이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능력에 따른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분을 찾을 수 있고,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나라와 백성은 부국안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그는 학문에 관심도 없고 실력도 없는 양반 사대부들이 유생(儒生)이라고 자처하면서 온갖 편법과 협잡으로 벼슬자리를 구한 다음 권력과 세도를 부려서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사회 현상은 양반 사대부는 양반 사대부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는 살려고 하지 않는 사회·경제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보자. 학문에 취미가 없거나 혹은 학문이 아닌 이재(理財)에 밝다고 하더라도 양반은 사회적 지위와 체면 그리고 상업을 멸시하는 사회 풍토 때문에 평생토록 ‘양반’으로 산다. 개인은 물론 국가 경제적으로 볼 때 다른 직업을 택하면 훨씬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평생 양반으로 벼슬자리나 탐하고 권력이나 부리는 일에 몰두해 나라와 백성에게 모두 해로움을 끼치는 것이다.

유수원은 이러한 현상이 조선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어서 “상인은 장사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장인(匠人)은 공업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농민은 농사일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선비는 선비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나라 전체에 직분을 지키는 사람은 없고 또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권력 다툼이 날이 갈수록 심하고, 고을에서는 포악함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해결책은 오직 한 가지로 ‘사민평등(四民平等)’이다.

“사농공상은 모두 똑같은 사민(四民)이다. 만약 사농공상이 모두 한 가지로 행세하고 살게 한다면 신분의 높고 낮음도 없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는 강과 바다에서 서로를 잊고 사람은 도리와 기술에서 서로를 잊듯이 결국 이런저런 다툼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서』 ‘문벌의 폐해를 논함(論門閥之弊)’

유수원이 볼 때 사농공상의 구분은 신분 질서나 계급 차별이 아닌 단지 직분과 능력에 따른 직업인으로의 차이일 뿐이다.

이렇듯 그는 봉건 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제 원리와 직업윤리·도덕을 전파한 경제학자였다는 점에서 단순히 토지 개혁이나 상공업 발전을 주장한 실학자나 경제학자들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 경제사상에 접근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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