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 “준비 안된 백면서생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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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포스코 회장 “준비 안된 백면서생의 혁신”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5.1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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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 경쟁력 강조하며 정준양 전 회장 방식의 성장 도모
▲ 지난 3월14일 포스코 8대 회장에 취임한 권오준 회장. <포스코 제공>

‘포스코 혁신’을 내건 권오준호(號)가 출범 두 달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3월14일 포스코 8대 회장으로 취임한 권오준 회장은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와 재무·조직구조 쇄신을 강조했다. 또 비전으로 ‘POSCO the Great’와 실행전략으로 ‘혁신 POSCO 1.0’을 내걸었다.

그러나 취임 두 달이 지난 현재 권 회장의 ‘포스코 혁신’은 탄력을 받지 못한 채 내부의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실행보다 말이 앞서는 구호성 혁신과 분명치 않은 개념으로 방향성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일부 포스코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지난 5년 동안의 눈치보기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흡연문화가 최대 혁신”이라는 말까지 들려온다.

19일 포스코와 재계에 따르면 권 회장 취임 이후 ‘포스코 혁신’을 대변할 만한 키워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사 부문에서 권 회장은 정준양 전 회장의 신임을 받으며 측근으로 활약했던 경영진을 재기용함으로써 인적청산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문 등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경영진은 김준식 포스코 사장, 박기홍 포스코 사장, 이동희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 조뇌하 포스코특수강 사장 등에 불과하다.

주요 계열사 CEO 자리가 회전문 혹은 정준양 전 회장 시절의 고위 임원들로 채워지면서 신선한 얼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의미다.

오히려 한 포스코 내부 인사는 가장 신선한 얼굴로 권 회장을 꼽았다. 그는 “차기 회장 후보군에 권 회장 이름이 올라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다”면서 “포스코에서 존재감조차 없었던 권 회장의 예상하지 못했던 회장 선임이 가장 신선했다”고 말했다.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한 가치경영실에 대한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룹 사업구조 재편과 재무구조 개선 등 조정 기능 수행을 위해 신설한 가치경영실의 간섭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가치경영실은 사내 전 부문의 모든 사항에 대한 보고와 이의 스크린 방침을 통보했다. 사실상 컨트롤타워 이상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한 팀장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혁신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스크린이라면 컨트롤타워 역할로 당연하다”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보고하라는 주문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전했다. 가치경영실을 ‘옥상옥’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포스코 안팎에서는 권 회장의 꼼꼼함과 경영능력 부재가 부른 해프닝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소통과 협력보다는 자기 일만 확실하게 처리했던 학자적인 성향이 강한 권 회장이 갑자기 거대 기업의 회장을 맡게 됨으로써 가치경영실의 스크린을 통해 포스코를 경영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1986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 입사하며 포스코에 발을 들여놓은 권 회장은 연구실 붙박이었다.

유럽연합(EU) 사무소장을 제외하면 RIST 강재연구부 열연연구실장, 포스코 기술연구소장, 포스코 기술총괄장 사장 등 경영과는 전혀 무관한 경력의 보유자다. 포스코 안팎에서 권 회장을 일컬어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경영실은 경영인으로 준비되지 않은 권 회장의 경영능력 부재를 보완하기 위한 조직으로 이해되고 있다.

▲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를 방문해 고로 작업현장을 방문해 근무자를 격려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권 회장이 취임 당시 제시한 4대 혁신 어젠다 가운데 가장 우선시했던 ‘철강 본원 경쟁력’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기술과 마케팅 융합, 고객 차별화 가치를 골자로 하고 있는 철강 본원 경쟁력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9월3일 당시 정준양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문리통섭(文理統攝)형’ 인재를 주문했다. 문리통섭형 인재는 글로벌 불황 및 국·내외 경쟁사들의 추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과 경영을 융합한 인재형으로 정 전 회장이 2009년 취임 때부터 강조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권오준 회장이 제시한 철강 본원 경쟁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국내외 철강시장에 대한 포스코의 인식전환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포스코는 국내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포스코 전체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강판시장에는 현대제철이 들어와 있으며 현대제철의 점유율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질적으로도 현대제철이 이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또 조선강국으로 지금까지 후판시장에서 누렸던 포스코의 지위도 해운업황 침체에 따른 조선업황의 부진으로 예전만 못하다. 후판은 포스코 전체 생산량의 20%에 달한다.

글로벌 철강시장은 지난 3월14일 회장 선임 직후 권 회장이 주총에서 밝혔듯이 “매우 심각한 공급과잉으로 포스코가 자랑하던 경쟁우위도 곧 사라질 위기”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거나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방안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권 회장은 정 전 회장과 같이 에너지 사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 신성장동력을 육성한다는 권 회장의 경영시선이 바로 에너지 사업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 시절 마치 자원개발에 사활을 건 듯한 이명박 정부의 관치에 유린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 정 전 회장이 사업 다각화로 총력을 기울였던 에너지 사업이다.

더구나 포스코는 이를 위해 M&A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삼척화력발전소 사업권을 가진 동양파워 인수전에는 참여했고 산업은행의 권유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는 ‘동부패키지’ 인수도 저울질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정 전 회장의 합작유물이라 할 수 있는 포스코의 에너지 사업이 권 회장 취임 이후에도 여전히 구조조정의 핵심 고리가 되고 있는 한편 이를 위해 M&A가 동원된다는 점에서 ‘정준양 그림자’가 진하다.

특히 동부패키지 인수가 성사될 경우 정부 요구에 포스코의 미래를 맡겼던 정준양식 경영이 재현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권오준 회장 출범 두 달여 동안 딱히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는 것과 관련 재계에서는 “공기업 잔재가 남아 있는 포스코의 특성상 3개월 내에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경우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석했다.

황창규 KT 회장이 잡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초기에 개혁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 때문으로 관측되고 있다.

물론 포스코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권 회장의 혁신과는 무관하게 직원들이 몸으로 체감하는 변화의 양과 폭은 크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권 회장 취임 이후 포스코에는 금연열풍이 사라졌다. 포스코 주변에서는 근무시간에도 신분증을 목에 걸고 흡연하는 포스코 직원들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특히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강제 이수교육이 대폭 축소된 것은 흡연과 함께 권오준 회장의 최대 혁신 성과로도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포스코는 팀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월 1회 토요학습을 정례화해 왔다. 또 팀장부터 회장까지 격주 수요강좌와 그룹장 이상 간부의 월례학습, e캠퍼스 강좌 등이 사실상 강제 이수교육이었다.

그러나 권 회장 취임 이후 이들 강좌는 월말 토요일 하루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권오준 회장 취임으로 포스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임직원과 함께 하지 못하는 혁신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포스코 퇴임 고위 관계자도 “정준양 전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새로운 회장을 선임한 것은 포스코의 파행경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면서 “지금 같은 수준의 혁신이라면 온갖 잡음을 불러일으키며 임기가 남은 정준양 전 회장을 굳이 교체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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