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도 철학과 품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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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도 철학과 품격이 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9.09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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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⑦
▲ 김홍도의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 지본담채, 23.2x27.8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⑦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의 삶에는 평생 ‘가난’이 마치 숙명처럼 따라 다녔다. 이덕무의 스승이자 가장 절친한 벗이기도 한 연암 박지원은 그의 ‘궁핍한 삶’에 대해 “때로는 해가 저물도록 먹을거리를 마련하지 못한 적도 있고, 때로는 추운 겨울인데도 방구들을 덥힐 불을 때지 못하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지원은 이덕무가 “젊은 시절부터 가난을 편안히 여겼고 벼슬길에 나간 후에도 거처와 의복이 예전과 다르지 않았을 뿐더러 ‘기(飢: 굶주림)’와 ‘한(寒: 추위)’이라는 두 글자를 결코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또한 규장각의 검서관이 된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 총애를 받았지만 쓸쓸한 오두막집에서 살며 빈천(貧賤)을 감내할망정 권세(權勢)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부귀와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이덕무는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재치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담백하게 적은 소품문을 수필집이자 수상록인 『이목구심서』의 이곳저곳에 남겨 놓았다.

“몇 해 전 경진년(庚辰年 : 1760년)과 신사년(辛巳年 : 1761년) 겨울, 내 조그마한 초가집이 너무나 추워서 입김이 서려 성에가 되고 이불깃에서는 와삭와삭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비록 성품이 게으르지만 밤중에 일어나 황급히『한서(漢書)』한 질을 이불 위에 죽 덮어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아 보았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얼어 죽어 후산(后山)의 귀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젯밤에도 내 집 서북쪽 모퉁이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등불이 심하게 흔들렸다. 추위에 떨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노론(魯論 : 논어)』한 권을 뽑아 바람막이로 삼았다. 스스로 임시 변통하는 수단이 있다고 으쓱댔다. 옛사람이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다. 금과 은으로 상서로운 짐승을 조각해 병풍을 만든 사람도 있지만, 이는 너무 호사스러워 본받을 것이 못 된다. 어찌 내가 천하에 귀한 경사(經史)인『한서』로 이불을 삼고『논어』로 병풍을 만든 것만 하겠는가!

또한 왕장(王章)이 소가죽을 덮고 두보(杜甫)가 말안장으로 추위를 막은 일 보다 낫지 않은가! 을유년(乙酉年 : 1765년) 겨울 11월 28일에 기록하다.” 이덕무,『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 1’

“을유년(乙酉年 : 1765) 11월에 형재(炯齋 : 이덕무의 서재)가 추워서 뜰 아래 작은 모옥(茅屋)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집은 매우 누추해 벽에 얼어붙은 얼음이 뺨을 비추고 구들의 그을음 때문에 눈이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아랫목이 울퉁불퉁해 그릇을 놓으면 물이 반드시 엎질러지고, 햇살이 비추면 쌓인 눈이 녹아 흘러 썩은 띠 풀에서 누런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방울 물일망정 손님의 도포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곤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거듭 사과했지만 나태한 성품 탓에 집을 수리하지 못했다.

어린 아우와 함께 서로 그대로 지낸 지 무릇 석 달이나 되었지만 오히려 글 읽는 소리만은 그칠 줄 몰랐다. 세 차례나 큰 눈을 겪었는데 매번 한 차례 눈이 올 때마다 이웃에 사는 작달만한 키의 노인이 반드시 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와서 문을 두드리며 중얼중얼 혼잣말로 ‘가련하구나! 연약한 수재(秀才)가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눈을 쓸어 먼저 길을 낸 다음 문 밖에 있는 눈 덮인 신발을 찾아내 눈을 탈탈 털어내고 말끔하게 청소했다. 쌓인 눈은 둥근 모양으로 세 덩어리를 만들어놓았다. 나는 이미 이불 속에서 고서(古書)를 벌써 서너 편이나 외웠다.” 이덕무,『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 2’

더욱이 이덕무는 ‘가난에도 철학과 품격이 있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청언 소품 역시 『이목구심서』에 남겨 놓았는데, 이 간결하고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글을 읽다 보면 가난은 결코 인간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의 정신을 결코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최상(最上)의 사람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긴다. 그 다음 사람은 가난을 잊어버린다. 최하등(最下等)의 사람은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해 감추거나 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을 호소하다가 가난에 짓눌려 끝내 가난의 노예가 되고 만다. 또한 최하등보다 못난 사람은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 그 가난 속에서 죽어간다.” 이덕무,『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 2’

소품은 이렇듯 극도로 절제된 언어 구사를 통해서도 세상 만물과 자신의 감성과 마음을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고 심오하게 담아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소품문을 가리켜 필자는 ‘간결과 여백의 미학’을 지녔다고 말하고 싶다.

아주 짧고 간략한 글이어서 읽는 사람이 무궁무진하게 생각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백와 여운의 미를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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