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오를수록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태바
“높은 곳에 오를수록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1.04 0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⑨…역설(逆說)의 미학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⑨…역설(逆說)의 미학⑤

[한정주=역사평론가] 대동법(大同法)의 개혁 정치가로 잘 알려져 있는 잠곡 김육은 스스로 지어 ‘구루정(傴僂亭)’이라 이름 붙인 정자에 대해 쓴 기문(記文)에서 사람은 높은 곳에 오를수록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벼슬이 높아지고 권력이 커질수록 오히려 더욱 머리를 수그리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한 번 명을 받은 벼슬아치는 몸을 구부리고, 두 번 명을 받은 벼슬아치는 허리를 굽히고, 세 번 명을 받은 벼슬아치는 머리를 수구린다”는 옛 솥에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을 언급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 속 역설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다.

“누대와 정자를 짓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쓸쓸하고 고요한 것을 싫어하고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한다. 또한 건물 기둥을 높다랗게 세우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짓고 멀게는 강가나 호숫가의 나루터 근처나 바깥으로는 교외의 논밭 사이에 세운다.

그러나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관아로 출근해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퇴근하는 바람에 한 번도 누대나 정자에 올라가 볼 틈을 주지 못해 오히려 주변에 사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나그네가 그곳에 올라가 한가롭게 거니는 일만도 못하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누대나 정자를 세운 꼴이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다. 더러 대문을 걸어 잠가놓고 다른 사람이 누대나 정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찌 크게 비웃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임시로 거처하고 있는 집 뒤쪽에 세 칸짜리 집을 지을만한 언덕이 있다. 그래서 띠 풀을 엮어 초가집을 짓고 안쪽 당(堂)의 이름을 공극당(拱極堂)이라고 하고 바깥쪽 정자에는 ‘구루정(傴僂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루정이라는 이름은 정자의 지붕이 낮아 머리가 부딪히므로 반드시 허리를 굽혀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구루정은 조그마한 정자에 불과했지만 높고 기이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아주 멀고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우뚝 솟은 바위와 푸르른 소나무는 조각하거나 꽂아 놓은 듯하다.

창 밖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목멱산(木覓山: 남산)의 잠두봉이고, 용처럼 꿈틀대고 호랑이처럼 웅크리고 있어서 내달리듯 멈춘 듯 서로 마주 대하고 돌아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백악산(白岳山)과 낙산(駱山)이다.

난새가 멈춘 듯 고니가 우뚝 서 있는 듯 마치 날아가려다 미처 날아오르지 못한 듯한 모습은 필운산(弼雲山)이고, 붓을 꽂은 듯 홀을 세운 듯 흡사 나아가려고 하다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은 도봉산(道峯山)이다.

수락산은 노원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불곡산을 전송하는 듯한 형상이고, 무악산은 안현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부아봉을 쫓아가는 듯한 모양새다. 기괴한 형상과 이색적인 부아봉을 쫓아가는 듯한 모양새다. 기괴한 형상과 이색적인 모양새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층층이 겹쳐 있다. 백운봉과 인수봉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가 구름 낀 하늘 밖 아득한 곳에 우뚝 솟은 모습은 더욱더 경외감을 불러일으켜 사랑스럽다.

매번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안개와 구름이 모습을 바꿔 숨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어느 누가 도성 안에 이처럼 신선의 세계와 풍경이 있는 줄 상상이나 하겠는가?

강호의 경치와 교외의 흥취가 즐겁고 또 즐겁다고 해도 항상 그곳에 머물러 거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번 왕래하고 두 번 왕래하는 사이에 해가 이미 기운다. 어찌 이곳에서 잠자고 거처하고 또 먹고 쉬면서 천 가지 기괴한 형상과 만 가지 이색적인 변화를 보며 마음과 눈을 기쁘게 하고 일 년 내내 창가에서 마주 대하는 것과 같겠는가?

나는 전국 팔도를 두루 유람했지만 감상할 만한 흥취가 일어난 풍경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태어나 7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빼어난 풍경을 얻어 정자를 지었다.

산골짜기의 물은 몸을 씻을 만하고, 바위 우물은 양치질을 할 만하다. 샘물이 내달릴 수 있도록 대나무를 쪼개 물길을 만들어 연못의 연꽃을 가꿀 만하고, 물고기를 감상하고 학을 길러 온갖 사물을 벗으로 삼을 만하다. 하루 종일 잠잠하고 고요하며 저잣거리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곳이야말로 평소 꿈속에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별천지다.

그러나 멀리 큰 길을 내려다보면 여염집들이 나지막이 땅에 엎드려 있고 궁궐을 바라다보면 우뚝 솟은 용마루가 하늘과 잇닿아 있다. 도성 안 사대부와 아녀자들이 구름떼처럼 오가며 이 정자를 보거나 감상할 텐데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에 높게 짓는 일이 꺼려진다. 처마와 서까래를 나지막하게 세우고 담장을 낮게 해 소나무와 대나무로 뒤쪽에 울타리를 쳐 검소함을 드러냈다.

높은 곳에 자리하면서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고 방에 들어와서는 굽어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감히 마음이 아주 시원하고 개운해지기만 즐겨 속세를 떠나 초야에 묻혀 사는 처사처럼 창가에 기댄 채 오만함에 취해서야 되겠는가?

옛 솥에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에 보면 ‘한 번 명을 받은 벼슬아치는 몸을 구부리고, 두 번 명을 받은 벼슬아치는 허리를 굽히고, 세 번 명을 받은 벼슬아치는 머리를 수그린다’고 적혀 있다.

나는 이 말에 매우 깊은 느낌과 울림을 받아, 머리를 수그리면서 내 정자를 ‘구루정(傴僂亭)’이라고 이름 하였다.” 김육, 『잠곡유고』, ‘구루정기(傴僂亭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