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부귀는 누릴수록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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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부귀는 누릴수록 마음이 불편하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1.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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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⑨…역설(逆說)의 미학⑥
▲ 겸재 정선, ‘계상정거도’, 종이에 먹, 25.3x39.8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⑨…역설(逆說)의 미학⑥

[한정주=역사평론가] 선조 시대 북인(北人)의 영수로 영의정에까지 올랐던 아계 이산해는 수작촌(酬酌村)으로 물러난 이후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수록 마음은 불편하고 궁벽하고 누추한 곳에 거처할수록 오히려 마음은 편안하다”는 삶의 역설을 한 편의 글 속에 담았다.

그러면서 “마음이 불안하다면 아무리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고 좋은 자연과 벗하고 살아도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지만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다면 오랑캐와 야만족이 사는 나라에 가서 살지 못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구포(鷗浦)에서 남쪽으로 산이 하나 구부러져 비스듬히 늘어 서 있다. 그 산은 20여리 정도 뻗어 내려 세 갈래로 나뉜다. 중간의 한 갈래가 꿈틀대는 뱀 모양으로 굽어 기다란 언덕이 되었는데, 마치 늙은 용이 누워서 꼬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잠깐 일어났다가 잠깐 엎드리는 듯하고,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져 마침내 바닷가에서 돌연 우뚝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바로 주봉(酒峰)이 된다. 오른편과 왼편의 두 갈래는 고기비늘이 어리듯 잇달아 날고 내달려 이포(梨浦)가 되고, 또한 외포(外浦)가 된다. 그리고 이들 이포와 외포가 주봉을 향해 인사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주봉의 꼭대기는 평평하고 넓어서 마치 사초(莎草: 바닷가 모래에서 자라는 풀 혹은 잔디)를 흩뿌려 놓은 듯하다. 평평하게 큰 바다와 맞닿아 있어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끝을 알 길이 없다. 참으로 보기 드문 아름다움이다.

주봉 동쪽 기슭에 수작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백성은 겨우 6~7가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수작촌에서 사는 백성 중 다 쓰러져 가는 집을 팔겠다는 사람이 있어 내가 황소와 옷가지를 주고 그 집을 얻었다.

작고 누추한 그 집은 기울고 허물어져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몰아쳐 도무지 거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초가를 두어 칸 더 세워 쉬고 자는 곳으로 삼았다. 동쪽의 한 면은 논이 서로 엇갈려 있어 자못 벌판의 풍취가 있다. 남쪽은 기다란 언덕과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외포의 동쪽은 봉우리가 고리처럼 빙 둘러 있는 형상이 마치 문을 닫아 걸어 놓은 듯 안팎이 끊어져 막혀 있어서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문의 안쪽은 언덕과 골짜기 하나하나가 모두 내 소유처럼 여겨졌다.

아침저녁으로 연기와 구름이 자태를 바꾸고 풍경과 사물이 봄·여름·가을·겨울마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의 답답함을 시원스럽게 풀어준다.

심한 병을 앓아 나는 몸이 허약해 세상사를 물리치고 끊어 잠자리 밖에서 신음하느라 다른 곳에 마음을 둘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고통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조금이나마 정신이 깨어나면 복건을 차려입고 명아줏대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홀로 나가 주봉에 잠깐이나마 들러 옛적 공자가 뗏목을 탔던 흥취를 그려보고, 또 남쪽 언덕을 서성이면서 옛날 제갈공명이 남양에서 몸소 밭을 갈던 즐거움을 떠올려보곤 했다.

그리고 동쪽 언덕에 올라서는 도연명처럼 휘파람을 불어보고 서포에서 노닐면서는 당나라 장지화처럼 낚시대를 잡아보곤 했다.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오면 방안에 놓여 있는 책걸상이 적막하기만 했다. 옛 서적을 펼쳐 들고 예전 현인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옛날을 굽어보고 지금을 쳐다보노라면 감동과 더불어 탄식이 절로 나온다.

탁주 한 사발을 손에 들고 마시면 문득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낀다. 그리고 붓을 잡고 종이를 펼쳐 놓고 내 마음대로 휘둘러 써 내려간다.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져 쌓여도 내버려 두고 거두지 않는다. 이것이 한가롭게 거처하면서 소일하는 내 은퇴 생활의 대강이다.

나는 성격이 수더분하고 호탕해 일찍부터 자연을 그리워하는 벽(癖)이 있었다. 그러나 한번 출세의 길로 접어들면서는 일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임금의 총애를 지나치게 받아 선비의 신분으로 최고 영예를 누렸으나 스스로 너무 졸렬하다 보니 자주 재앙의 그물에 걸려들곤 했다.

이제 여유롭게 한가한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적막한 해변가에 내던진 신세가 된 것도 참으로 천지부모가 내려주신 것이다. 지난 50년간을 떠올려 보면 영욕과 부침으로 어지러웠던 세월이다. 마치 봄날에 한바탕 꿈을 꾸고 깨어난 듯하다.

이따금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묻곤 한다.

‘옛날 물러나 은퇴한 후 은둔 생활을 만족스럽게 하는 선비들은 간혹 전원에다 집을 짓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거처로 삼곤 했습니다.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의 향산(香山)이나 송나라의 거사 위야의 감당(甘棠)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향 집의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버리고 풍토가 나쁜 곳에서 거처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대가 좇는 즐거움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단 말입니까?’

이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고고한 뜻을 품은 사람도 아니고 공명을 이루고 물러나 만년을 잘 보내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참선에 빠져 먼 길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노년을 보내려고 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특별히 문을 닫아걸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 나머지 날로 병이 쇠하고 고질이 되어서 이미 쉽게 멀리 가지 못해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궁벽한 마을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나무하는 아이나 고기 잡은 어부와 서로 트고 지내면서 남은 삶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명승지를 골라서 휘황찬란하게 집을 짓고 빼어난 풍경을 즐기고 음악에 젖어 사는 삶은 당대에 권력과 부귀영화를 이룬 사람들이 하는 바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이 누리는 즐거움이란 내면에 존재하지 외면에 있지 않다. 따라서 참으로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다면 오랑캐와 야만족이 사는 나라에 가서 살지 못하겠는가?

또한 마음이 불안하다면 아무리 좋은 자연과 벗하고 살아도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풍토가 좋지 않고 누추한 곳이지만 내 마음이 편안한데, 내가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산해, 『아계유고』, ‘수작촌기(酬酌村記)’

이산해보다 한 세대 앞서 활동한 문인 사재(思齋) 김정국 또한 이와 비슷한 이치를 담고 있는 글을 썼는데, 그는 여기에서 자신보다 옷과 음식과 집이 백배나 호사스러우면서 이것저것 재물을 모으는 것을 멈출 줄 모르는 한 친구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오히려 더욱 넉넉해질 것이네.”

“서울에서 자네가 쉬지 않고 집을 짓는다는 소문을 들었다네. 남들이 전하는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그런 짓을 그만두고 조용히 살면서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70세를 산다면 정말 장수했다고 한다네. 나와 자네가 그렇게 장수하는 복을 누린다고 해도 남아 있는 세월이라야 겨우 10여 년에 지나지 않네. 무엇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말 많은 자들의 구설수에 오를 짓을 사서 한단 말인가?

내 이야기를 함세. 나는 20년을 가난하게 살면서 집 몇 칸 장만하고 논밭 몇 이랑 경작하고 겨울에는 솜옷, 여름에는 베옷 몇 벌을 갖고 있네. 잠자리에 누우면 남은 공간이 있고 옷을 입고도 남은 옷이 있으며 주발 바닥에는 먹다 남은 밥이 있다네. 이 여러 가지 남은 것을 자산으로 삼아 한세상을 으스대며 거리낌 없이 지낸다네.

천 칸 되는 고대광실 집에다 십만 섬의 이밥을 먹고 비단옷 백 벌을 갖고 있다 해도 그따위 물건은 내게는 썩은 쥐나 다를 바 없네. 호쾌하게 이 한 몸뚱어리를 땅에 붙이고 사는 데 넉넉하기만 하네.

듣자니 자네는 옷과 음식과 집이 나보다 백배나 호사스럽다고 하던데 어째서 조금도 그칠 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는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기는 하네.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 통하는 창 하나, 햇볕 쪼일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네. 이 열 가지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네. 늙은 날을 보내는 데 이밖에 구할 게 뭐가 있겠나.

세상사 분주하고 고단하게 꾸려가는 중에 저 산수 간에서 열 가지 물건과 보낼 재미를 생각하기만 하면 어느새 돌아가고픈 기분에 몸이 훨훨 날 듯하네. 그러나 몸을 빼내어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나. 벗이여! 이 점을 잘 헤아리게나.” 김정국, 『송와잡설(松窩雜說)』, ‘황모에게 붙이는 글(寄黃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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