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 많은 사람은 부탁을 우려해 먼저 가진 것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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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이 많은 사람은 부탁을 우려해 먼저 가진 것 없다고 말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1.2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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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⑨…역설(逆說)의 미학⑧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⑨…역설(逆說)의 미학⑧

[한정주=역사평론가] 박제가의 글 ‘기린협으로 떠나는 백영숙(백동수)을 전송하며(送白永叔基麟峽序)’는 가난하고 궁색할 때야 비로소 지극한 벗을 사귈 수 있고,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거나 말을 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말이 나오고, 재물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은 가진 것이 없다고 하며 마음과 뜻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을 나누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과 같지만 마음의 틈이 없다면 아무런 말이 없어도 많은 말을 나눈 것과 같다는 등 글 속 곳곳에서 역설과 반어의 수사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는 한 편의 장쾌한 걸작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는 궁핍할 때 사귄 벗을 꼽고, 친구의 가장 깊은 도리로는 가난할 때 의논하는 일을 꼽는다. 높은 뜻과 벼슬을 지닌 선비가 더러 쑥이나 가시덤불로 간신히 지붕을 이은 가난한 선비의 집을 찾는 일도 있고, 낡은 베옷을 걸친 보잘 것 없는 선비가 더러 소매 자락을 끌며 권세가나 높은 벼슬아치의 집을 드나드는 일도 있다. 그토록 간절하게 친구를 구해 찾아다니지만 서로 마음이 들어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왜 그럴까?

이른바 친구란 반드시 술잔을 주고받으며 교제에 힘을 쏟고,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는 사람을 뜻하지는 않는다. 말을 하고 싶지만 결코 말하지 않거나 말하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에서 사귐의 깊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물건을 아끼는 욕심이 있다. 그 중에서도 재물을 아끼는 욕심이 가장 심하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그 중에서도 재물에 대한 부탁을 가장 싫어한다. 그렇다면 사사로이 자신의 재물을 의논하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시경』에서는 ‘궁색하고 가난함이여! 아무도 내 어려움 알지 못하네’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어렵고 가난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털끝만큼이라도 움직여 도와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천하의 은혜와 원한이 생겨나는 법이다.

가난을 감추고 말조차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이 전혀 없겠는가? 자신의 집 문밖을 나서서 억지웃음을 띠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가 오늘 먹을 밥이나 국에 대해 몇 번이나 언급할 수 있을까?

평소 하던 이야기를 꺼내 놓고도 코앞에 놓여 있는 쌀뒤주에 대해서는 감히 묻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말의 기미 사이사이에는 아주 꺼내 놓기 힘든 말이 숨어 있다. 부득이하게 시험 삼아 조금 말을 꺼내다가 말꼬리를 잘 돌려서 부탁이라도 할라치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또한 설령 꺼낸다 하더라도 꺼내지 않았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재물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부탁할 것을 우려해 먼저 자신은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기대를 끊으려고 아무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이른바 술잔을 주고받으며 교제에 힘을 쏟고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맞대고 앉은 친구 사이라고 해도 설움에 젖어 머뭇머뭇 걸음을 떼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실의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나는 이것으로 가난을 의논한다는 말이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격분에 차서 나온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난하고 궁색할 때 사귄 친구를 ‘지극한 벗’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가 아무 허물이 없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까? 또한 요행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하고, 겉모습이나 행적을 돌아다볼 필요가 없고, 가난이 주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을 부여잡고 수고로움을 위로할 때는 반드시 먼저 밥은 먹었는지 굶었는지,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지치지는 않았는지를 묻고 그런 다음 집안 살림의 형편을 물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일조차 저절로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진심으로 나를 측은하게 여기는 정을 느끼고 감격하는 바람에 마음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형편도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입에서 곧바로 쏟아져 나와 억누를 길이 없게 된다. 어떤 때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베개를 베고 잠을 청한 다음 떠나곤 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다른 사람과 십 년간 나눈 대화보다 더 낫다.

그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친구를 사귈 때 마음과 뜻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을 나누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벗을 사귈 때 마음의 틈이 없다면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있다고 해도 마냥 좋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만나도 항상 새롭고,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 사귄 벗도 옛 친구나 다름 없네’라는 말이 있다.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박제가, 『정유각집』, ‘기린협으로 떠나는 백영숙(백동수)을 전송하며(送白永叔基麟峽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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