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라!”…진정한 세일즈맨 보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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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라!”…진정한 세일즈맨 보부상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2.06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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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거상에게 배운다]① 지역과 시간차 이용해 시세 차익 남긴 ‘유목민적 상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0%대 경제성장률이 지속되고 있다. 생산과 소비가 움츠러들고 청년실업은 이젠 고질병으로 곪아가고 있다. 정부지출이 마이너스 성장을 가까스로 틀어막고 있지만 버겁기만 하다.

치솟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 돼 버린지 오래고 소비심리는 불투명한 경기전망에 지갑을 꼭꼭 잠그고 있다. 기업의 투자와 생산도 줄어들며 성장은 고사하고 경제악순환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본지는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속절없이 침몰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돌파구를 조선시대 거상들에게서 찾아나선다. 올해 초부터 연재하고 있는 [조선시대 경제학자]를 통해 국가경제와 경제정책들을 살폈다면 [조선의 거상]은 개인과 기업이라는 경제주체들에게 초점을 맞춘 기획이다.

향후 연재기사에서는 조선시대의 조직시스템과 회계운영매뉴얼, 새로운 시장 전략, 인재교육, 고객 감동 마케팅 등이 소개될 예정이다. 특히 각 유형을 대표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내세워 현대 비즈니스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사례들과 고대 로마와 중국의 사례까지 결합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 소유 권용정의 풍속화 ‘보부상’. 옹기와 함지박을 파는 등짐장수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으로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다.

[조선 거상에게 배운다]① 지역과 시간차 이용해 시세 차익 남긴 ‘유목민적 상술’

[한정주=역사평론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합쳐 부르는 보부상(褓負商: 혹은 부보상)은 삼국시대의 기록에도 등장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상인 계층이다.

발품을 팔아 물건을 파는 장사꾼답게 이들은 무엇보다도 ‘소비자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다니는 상술’을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으로 여겼다.

상업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중상주의 경제정책을 펴야 조선이 비로소 부국강병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 『북학의』의 저자 박제가는 백성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8세기 당시 조선과 중국(청나라)의 상황을 비교 고찰하면서 중국 사람들은 가난하면 상인이 되는 반면 조선 사람들은 장사를 천박한 짓이라고 여겨 상인을 업신여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고방식과 생활태도의 차이에서 중국은 부유하고 번성한 반면 조선은 가난하고 궁색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박제가는 상인의 활동은 상품과 물자의 거래는 물론이고 사람과 나라 사이의 왕래를 활성화시켜 개화와 문명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활발한 판매 유통과 왕성한 소비는 새로운 상품 생산과 공급을 자극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보았다. 즉 상품과 화폐는 흐르는 물처럼 원활하고 활기차게 유통시켜야 백성들은 부유해지고 나라의 경제는 성장한다는 말이다.

그 상품과 화폐를 원활하고 활기차게 유통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상인 계층이다. 그리고 소비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보부상은 그 역할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규모 상업 조직을 갖춘 개성상인이나 경강(한양)상인의 경우 역시 보부상들이 마치 실핏줄처럼 전국의 유통망과 판매망을 짜고 있었기 때문에 막강한 시장 지배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보부상은 큰 자금을 들이지 않고도 백성들이 너나없이 장사에 뛰어들 수 있는 최적의 상업 모델이었다.

만약 박제가가 가난을 벗어나려는 백성들을 상대로 조언자 역할을 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이 무엇인지 파악한 다음 직접 발품을 팔아 물건을 파십시오.”

◇ 사람이 모이는 곳, 그곳에 부자가 있다!

보부상들이 상업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지역과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 시세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한 지역의 특산품을 다른 지역으로 가지고 가서 판매하거나 또는 그곳에서 구매한 상품을 다시 수요가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판매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보부상들은 특산물이 생산되거나 모이는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떠돌면서 상업 활동을 했다.

18세기 중엽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擇里志)』에 보면 상품과 사람이 모여드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보부상들이 부자가 된 사례가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 상주와 충청도 목계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상주는 북쪽으로 조령과 가까워 충청도와 경기도로 통하는 길목이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접하고 있어 김해나 동래와 교통할 수 있다. 또한 물품을 운반하는 말과 짐을 가득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육로 혹은 수로를 통해 모여든다.

이렇듯 상주는 육지와 수로를 잇는 교통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어 장사하기에 아주 편리했다.

이중환은 이 때문에 상주에는 부유한 자가 많고 또한 이름난 선비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했다.

목계는 동해의 생선과 영남 산골의 물품이 모여드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 백성들은 모두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보부상의 상술이란 다름 아닌 사람이 모여 사는 거주지나 물품이 모여드는 집산지나 교통 요충지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시세 차익을 얻는 방식이라고 하겠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쓰자면 노마드(nomade), 즉 ‘유목민적 상술’이다.

보부상 가운데 일개 행상이 아닌 거상 혹은 부자가 된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상술에 능통했다. 예를 들면 이용익은 등짐장수인 부상이 되어 소금을 지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드나들고 또 러시아에서 성냥을 사와 북청과 회령 일대에 판매하는 상술로 재물을 모았다.

또한 이승훈은 놋그릇(유기) 행상이 되어 직접 새로운 시장과 수요 계층을 개척하고 다니다가 황해도 재령 일대의 목화를 사들여 큰 도회지인 평양과 정주에 가져가 파는 상술로 막대한 이득을 남겼다.

◇ 믿음과 인격을 함께 판매하라!

물품을 이고 지고 이익을 좇아 이곳에서 저곳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특성 때문에 보부상들은 상술(商術) 못지않게 상도(商道)를 중요시했다. 특히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고 시장과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거짓말과 속임수로 물품을 판매하는 일 또는 동료 보부상이나 소비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엄격하게 처벌했다.

이러한 까닭에 상업 윤리를 지키고 철저한 서비스 정신을 가졌을 때에야 비로소 ‘뜨내기 장사꾼’이 아닌 ‘명실상부한 보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851년 작성된 충남 예산 지역 보부상조직의 규율을 보면 그들 보부상 집단이 매우 철저하게 상업 윤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규칙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게 처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없는 자는 볼기 50대를 친다.
2. 보부상 조직의 윗사람을 속이는 자는 볼기 40대를 친다.
3. 시장에서 강제로 물품을 판매한 자는 볼기 30대를 친다.
4. 동료 보부상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 자는 볼기 30대를 친다.
5. 술주정을 하며 난폭한 행동을 한 자는 볼기 20대를 친다.
6. 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상업 활동을 한 자는 볼기 30대를 친다.
7. 동료나 소비자에게 공손하게 말을 하지 않는 자는 볼기 30대를 친다.
8. 젊은 사람으로서 나이 든 사람을 능멸한 자는 볼기 25대를 친다.
9. 병이 든 보부상 동료를 돌보지 않는 자는 볼기 20대를 치고, 벌금 3전을 내게 한다.
10. 놀음이나 잡기를 즐기는 자는 볼기 30대를 치고, 벌금 1냥을 내게 한다.
11. 초상집을 찾지 않는 자는 볼기 15대를 치고, 벌금 5전을 내게 한다.
12. 보부상의 계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자는 볼기 10대를 치고, 벌금 1냥을 내게 한다.
13. 부고를 받고도 연락하지 않는 자는 볼기 10대를 치고, 벌금으로 부조금의 두 배를 내게 한다.
14. 보부상의 모임에서 빈정대며 웃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자는 볼기 15대를 친다.

이러한 조직 규율은 비단 예산 지역의 보부상뿐만 아니라 당시 전국 팔도의 모든 보부상 조직들이 당연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구체적인 규율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이른바 4대 강령, 즉 ‘물망언(勿妄言: 함부로 말하지 말라), 물패행(勿悖行: 패악무도한 행동을 하지 말라), 물음란(勿淫亂: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 물도적(勿盜賊: 도적질을 하지 말라)’과 더불어 보부상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했다.

보부상은 4대 강령과 조직 규율에 따라 일찍부터 훈련받았기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상업 윤리를 기준삼아 장사를 했다. 그 상업 윤리의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상품과 더불어 소비자에게 신용과 인격을 함께 판매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한 번 장사해 남기는 이익보다는 상품을 팔고 맺은 소비자와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라는 보부상 특유의 상술과 상도가 낳은 상업 윤리였다.

보부상 조직은 수요자와 소비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상품을 판매했다는 점에서 ‘조선의 종합상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특유의 개척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새로운 교통로를 열었던 조선 경제의 중추 세력이었다. 또한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고 이익만 챙기고 떠나면 그만인 뜨내기 장사꾼이 아니라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채 물건과 더불어 신용과 인격까지 함께 판매했던 진정한 세일즈맨이었다.

그런 점에서 국내 시장과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자는 한번쯤 시장과 소비자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보부상의 유목민적 상술(商術)과 더불어 상품뿐만 아니라 신용과 인격까지 함께 판매했던 상리(商理)를 연구해보라고 권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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