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주인은 국가와 농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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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주인은 국가와 농민뿐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2.1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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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중농주의 경제학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③
▲ 정약용의 여전론은 공동소유-공동노동-공동분배의 원칙에 입각한 농촌공동체론으로 당시 토지 사유-대토지 소유-지주·소작 관계에 의거한 봉건지주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토지개혁론이었다. 그림은 모내기 모습을 담은 풍속화가 이억영 화백의 작품.

[조선의 경제학자들] 중농주의 경제학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③

[한정주=역사평론가] 농업 경제를 주요 기반으로 한 봉건 왕조체제에서 토지 소유에 관한 문제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토지로부터 나온 생산물에 의해 나라의 재정도 백성의 삶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에 양대 전란 이후 체제 개혁을 부르짖은 학자나 사상가들은 모두 토지 소유 문제, 특히 토지겸병(대토지 소유)과 지주-소작 관계의 폐단을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로 다루었다.

그럼 정약용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을까? 이 문제는 그의 경제사상이 출발하는 시작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신(臣)이 일찍이 생각해 보건데 토지에는 오직 두 사람의 주인이 있을 뿐입니다. 그 하나가 국가(임금)이고 다른 하나는 농민입니다. …(중략)… 이 두 사람 이외에 또 누가 감히 토지의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부호와 지주들이 멋대로 토지를 겸병(兼倂)하여 나라가 거두는 세금 이외에 사사로이 토지에서 조세(租稅: 소작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토지의 주인이 셋이 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약용, 『여유당전서』 ‘호남 여러 읍의 소작농이 조세 바치는 풍속을 엄격하게 금지하기를 청하려던 차자(箚子)’ 중에서

정약용이 형조참의로 벼슬살이하던 1799년 발표한 ‘전론’은 이처럼 ‘토지의 주인은 국가와 농민뿐이다’는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정약용의 경제사상이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라는 ‘토지 공유’와 농사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갖는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철저하게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그가 ‘전론’을 통해 세상에 밝힌 여전론에는 이러한 기본적인 토지사상이 철두철미하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정약용이 주창한 여전론은 여(閭)라는 마을 단위의 확정→모든 토지의 공유화→공동 노동 및 경작→공동 수확→투하 노동량과 노동 기여도에 따른 공동 분배의 과정과 절차로 이루어진 토지개혁론이다.

특히 정약용은 여전론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농사를 짓는 사람만 토지를 얻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토지를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럼 ‘여전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여(閭)’는 산골짜기와 시내 언덕의 지세(地勢)에 따라 경계 구역을 정하고 30호(戶)를 기본 단위로 해서 설치한다. ‘여’의 모든 토지는 공유화(국가 소유화)해서 마을 백성의 공동 소유로 만든다. 그리고 ‘여’에 소속된 농민들은 여장(閭長: 우두머리)의 지시에 따라 토지를 공동 경작하고 수확한다. 그럼 공동으로 경작하고 수확한 생산물은 어떻게 분배될까? 이에 대해 정약용은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매일 여의 농민들이 일할 때마다 여장은 노동일수와 노동량을 장부에 기록해둔다. 그리고 곡식을 거둘 때 그 수확물을 모두 여장의 창고로 운반한 다음 양곡을 분배한다.

이때 먼저 나라에 바치는 세금을 계산하고, 다음에는 여장의 녹봉(봉급)을 제한 다음 그 나머지를 가지고 기록해 둔 장부에 의거하여 노동일수와 노동량에 따라 농민들에게 분배한다.” 정약용, 『여유당전서』 ‘전론3(田論三)’ 중에서

여의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고 수확한 다음 국가에 바치는 세금과 여장의 녹봉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을 각자의 노동량과 노동일수에 따라 공동 분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여전론은 공동소유-공동노동-공동분배의 원칙에 입각한 농촌공동체론으로 당시 토지 사유-대토지 소유-지주·소작 관계에 의거한 봉건지주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토지개혁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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