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는데 사대부들이 먼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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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는데 사대부들이 먼저 망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2.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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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②
▲ 김후신의 ‘대쾌도’. 종이에 담채. 33.7㎝×28.2㎝.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②

[한정주=역사평론가] ‘풍자’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한자의 뜻만 보더라도 넉넉함과 여유로움보다는 날카로움과 꾸짖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풍(諷)’자는 ‘알리다, 외우다, 간(諫)하다’는 뜻이고 ‘자(刺)’자는 ‘찌르다, 나무라다, 꾸짖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풍자는 해학처럼 비록 농담과 웃음을 빌지만 반드시 날카로운 비판과 가시 돋힌 조롱과 조소를 통해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을 폭로하거나 개혁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풍자는 해학보다는 훨씬 더 사회비판적이고 사회개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다만 단지 한 번 웃고 마는 농담과 웃음과는 다르게 대개 해학과 풍자는 그냥 웃고만 넘어갈 수 없는 나름의 철학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풍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글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에서는 18세기 말 정조 때 당파 싸움의 과정에서 등장한 노론(老論)의 분당 세력, 곧 시파(時派)와 벽파(僻波)라는 용어가 민간에까지 널리 퍼져 그 뜻과 연원도 모른 채 사람들이 바둑과 장기를 둘 때나 노름을 할 때도 시패니 벽패니 나누어 다투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마치 당파를 나누듯 시패와 벽패로 편을 갈라 노는 세태를 조롱하는 가운데 서로 죽고 죽이기를 되풀이하는 양반사대부의 당파싸움을 비판한 심노숭의 ‘산해필희(山海筆戱) 신유록(辛酉錄)’이라는 글이 읽어볼 만하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촌사람들이 와 바둑을 두는데 한 사람은 곁에서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패로 다투는데 서로 패를 말하면서 불청을 불러대니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웃으며 말하였다. ‘만패, 천패, 시패, 벽패, 상야패, 그래 누가 더 많이 죽였냐?’ 그 말이 중첩되는 것이 마치 노랫가락 같았다.

나는 누워 책을 보다가 그걸 듣고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으며 보던 책을 덮고 앉아 묻기를 ‘만패·천패는 바둑에서 늘 하는 말이나 시패·벽패는 대체 무엇이냐?’라 하니 그가 말하기를 ‘서울에 시패·벽패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기술이 서로 죽이는 것이라 하더이다. 이것이 장기의 패인지 바둑의 패인지, 아니면 골패의 종류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서울말을 어디서 들었느냐?’

‘중방(中房)이 말해주었습니다.’

중방이라는 것은 현감이 데려온 겸인(傔人)의 속칭이다.

아!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이른바 시벽(時僻)의 이름이 처음 나오게 된 것은 갑진년(1784) 봄여름 사이로 당인배들이 속어·별명처럼 스스로 표방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사우(士友) 사이에 이 말이 전해지면서 웃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병오년(1789년)과 정미년(1787년) 연간에 성행되더니 드디어 이름으로 굳어져 자칭 어느 패 어느 패라는 것이 있게 되었다. 을묘년(1795년) 후에 심벽(心僻), 구벽(口僻), 족벽(足僻), 천치개벽(天地皆僻)의 말이 나오게 되었더니 근년 들어서는 노론, 소론의 일컬음보다 더 성행되어 사람 이름처럼 그 사람을 지칭함에 반드시 어느 패라고 먼저 말하게 되었다.

나와 동생 또한 그러한 습속에 물들고 귀에 익어 이렇게 말하곤 하였더니 선군께서 엄하게 꾸짖어 말씀하시길, ‘너희들 생각해 보거라. 이 어찌 사대부가 입에 담을 말이더냐! 패라는 것은 대(隊)라는 것으로 향도꾼패, 투전꾼패, 역정모꾼패 등에 쓰는 말이요, 각 패의 우두머리는 패두라 일컬으니 사대부에 패가 있다는 것은 들어보질 못했다. 지난날 북당(北黨)에 계패(桂牌)라는 것이 있어 극악한 적이 나왔을 뿐이다. 이 말은 주자(朱子)가 말한 ‘나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는데 사대부들이 먼저 망했다’는 조짐이 아니겠느냐! 내가 시패·벽패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놀라하였더니 너희까지 이런 말을 하느냐!’라 하셨다.

이후 우리 형제는 부친의 말씀을 명심하고 감히 입에 담지 않았다. 누가 시패·벽패란 말을 꺼내면 우리는 그 사람의 이름을 들어 말하였으니 이는 선군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우이(牛李), 천촉(川蜀), 절림(浙林)은 성씨와 거주지로 당(黨)을 일컬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동서(東西)로 사람을 일컬었는데 동인은 북인으로 나뉘었다. 북인에는 대북과 소북이 있는데 대북은 골(骨), 육(肉), 피(皮), 탁(濁)으로 나뉘어져 그 말이 비리부패(鄙俚浮悖)하더니 끝내 서로 이끌어 대비를 폐위시키고 왕자들을 죽이는 대륜(大倫)의 죄인이 되었다.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지니 연배(年輩)와 언론(言論)으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노론은 다시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었다. ‘당’과 ‘인’과 ‘론’은 사대부의 명칭이 됨에 해될 것이 없으나 ‘촌’만은 좀 비루하다.

저 이른바 ‘패’라는 것은 천고에 없던 바이나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사대부들이 마치 소설 『수호전』의 108인의 명목(名目)처럼 기치를 내걸었으니 다 천박하여 행실 없는 자들의 짓거리였음에도 그 안에조차 패라는 말은 없었다.

지금 이 말은 누가 만든 말인지 모르겠으나 어찌 인력으로 막을 수 있으리오? 잘못이 고착된 것이 이미 견고하고 말이 퍼진 것도 넓어 천리 바다 끝까지 이르러 일개 미천한 심부름하는 아이까지 그것이 무슨 일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고 듣고 얘기하기를 ‘그 기술이 서로 죽이기’라 하고, 어떤 이는 그것이 바둑 용어인지 골패 용어인지 의심하다가 심지어 ‘누가 더 많이 죽였냐?’고 한다.

그 말이 비록 심히 무지하나 깊이 이치에 적중된 듯하니 소위 상서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냐! 이것을 듣고 처음엔 웃었다가 다시 절절히 탄식한다.

기록하여 훗날의 볼거리로 삼고 태첨(泰詹: 심노숭의 아우)에게 써 보내니 거듭 천 리 먼 곳에서 한번 웃음을 터뜨릴 만하지 않은지?” 심노숭, 『효전산고(孝田散稿)』, ‘산해필희(山海筆戱) 신유록(辛酉錄)’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한 편의 글 속에는 ‘해학과 풍자의 정신과 미학’이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에 구태여 이것을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다. 다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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