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미국 소방관의 장례식
상태바
[칼럼] 어느 미국 소방관의 장례식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6.10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V를 켜는 순간 깜짝 놀랐다. 국장(國葬)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장례식이 TV 채널마다 생중계되고 있었다.

검은 정장차림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행렬을 따라 행진했고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방송국은 1시간이 넘도록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생중계를 이어갔다.

군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미끄러지는 장의차는 단 한 대. 처음엔 내가 알지 못하는 국가적인 영웅의 죽음으로 알았다.

지난 1998년 미국 휴스턴에서 TV를 통해 목격한 장례식 생중계는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바꿔놓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화재진압 도중 사망한 어느 소방관의 죽음에 도시는 그를 영웅으로 불렀다. 다음날 ‘휴스턴크로니클’도 장례식 사진을 1면에 올리고 ‘영웅의 장례식’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미국 소방관 한 명의 순직은 그동안 한국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나와 무관한 이의 죽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많은 어린이들에게 영웅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장래희망을 표현한 그림 속의 주인공이 소방관인 경우는 숫적으로 언제나 상위권이었고 9·11 테러 이후에는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저 ‘불 끄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안전을 책임지고 위기에서 다른 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로 인한 고도성장으로 선진국 대열에 끼었다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 사회지만 아직도 3D 업종이라는 직업군이 존재하고 있다.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이들 직업군에는 아마 소방관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해야 하고, 또 하고 있는 일’이다. 또 그 누군가는 그 직업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느끼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한복판 광화문광장에 소방복으로 완전무장한 한 명의 소방관이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불볕더위는 아니었지만 잔뜩 흐린 하늘이 습기를 가득 품고 있어 불쾌지수와 체감더위가 올라가는 날씨였다.

들고 있는 피켓에는 “최근 5년간 29명 순직, 1626명 부상…소방관이 위험하면 국민도 위험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소방관들이 릴레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소방공무원들의 단체인 소방발전협의회는 지난 2일 발표한 성명에서 “하나된 조직체계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 “현장대응 소방인력 증원과 낡고 부족한 장비의 현대화”를 주장했다.

그들은 “소방이 침몰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국민의 생명을 지켰다면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 소방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은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가 됐다. 그러나 조직의 이름 바꾸기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 안전 관련 직업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조직만 있고 사람이 없는 정책의 전형이다.

사실 확인은 되지 않지만 “죽을까봐 선내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들의 교신내용에 일방적인 비난만 쏟아 부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광화문광장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소방관을 보며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 어떤 부모는 “너는 커서 저런 소방관이 되면 안 돼”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