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정 국궁교실을 가다] 빈활 당기기 6개월 만에 “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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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 국궁교실을 가다] 빈활 당기기 6개월 만에 “활 배웁니다”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7.01.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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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궁력·궁체와의 싸움…사대에 선 후부터 진정한 활 배우기 시작
▲ 서울 황학정 사대에서 신사(新射)들이 첫 습사를 하고 있다. <사진=헤드라인뉴스>

엄지손가락·궁력·궁체와의 싸움…사대에 선 후부터 진정한 활 배우기 시작

여름의 끝은 가을이라고 믿었다. 줄줄 흐르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올랐던 사직동 비탈길의 보상이라곤 고작 천장에 매달린 고물 선풍기 4대뿐이었지만 2016년 여름을 견딜 수 있었던 동력은 가을이었다.

그러나 사직공원 뒷길에 낙엽이 쌓이고 어느덧 인왕산마저 허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지만 여름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첫 달 80여명에 달했던 이들은 한 달 만에 32명으로 강제됐고 첫눈이 내릴 즈음엔 또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퉁퉁 부어 이상변이현상이 온 엄지손가락과 상체 곳곳에서 전해오는 통증을 견딘 시간은 오롯이 생존자 14명만에게만 주어진 자산이었다.

그렇게 사직동의 여름은 가을이 아닌 겨울바람이 불면서 겨우 끝이 났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사직공원을 끼고 인왕산길 쪽으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큼지막한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국궁의 종가이자 성지로 전국 활터의 중심인 국궁1번지 ‘황학정’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국궁교실을 개설하고 활쏘기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황학정의 국궁교실은 활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수강생이 있을 때에만 구사(舊射:경력자)들이 비정기적으로 가르치는 다른 활터와 달리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전문스포츠지도사(궁도) 자격증을 취득한 사범들을 두고 정기적으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기초반 1개월을 거쳐 심화반 3개월 과정을 마치면 개인별 수준에 따라 사범의 평가 후 순차적으로 사대(射臺)에 서게 된다.

▲ 황학정 궁국교실 수강생들이 사범의 지도를 받으며 한강고수부지 상암정에서 습사를 하고 있다. <사진=헤드라인뉴스>

2017년 새해 첫 해가 떠오르기 전의 새벽 겨울은 회색빛을 머금고 있었다. 옅은 어둠이 깔린 산자락 사이로 흐릿하게 형체를 드러낸 도시의 건물들 앞에는 3개의 과녁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신사(新射:초보자)들의 호기심을 즐기는 듯 붉은 눈으로 쏘아봤다.

두 달여 전쯤 한강 고수부지의 상암정에서 야외습사 경험이 있다지만 처음 서는 황학정 사대가 주는 위압감은 사뭇 달랐다. 사대에서 과녁까지 평지로 조성되고 좌우도 넓은 공터에 뒤쪽은 강이라는 상암정에서의 심리적 안정감이 도심 건물과 도로를 끼고 있는 황학정에서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사대에 선 이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흥분이 가득했다. 하긴 이곳에 서기까지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는 지쳐 중도에 포기하고, 누군가는 쉽고 빠르게 가르친다는 다른 활터로 옮겨가고, 또 누군가는 일에 쫓겨 게으름을 부리기도 했지만 온전히 몸으로 시간을 이겨내지 않았던가.

▲ 황학정 사대에서 바라본 과녁. <사진=헤드라인뉴스>

사실 국궁을 배우겠다고 나섰을 때 그리 대단한 각오를 다졌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만만하게 여겼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대부분의 신사들은 초기에 세 가지의 벽과 싸워야 한다. 바로 엄지손가락의 고통과 궁력(弓力) 그리고 궁체(弓體: 활쏘는 자세)다. 어느 것이 앞서고 어느 것이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이겨내야 하는 숙제다. 엄지손가락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궁력을 키워야 하고 궁체도 제대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첫 수업 때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을 향해 사범은 젓가락질이 힘들 만큼 엄지손가락이 아플 거라며 손으로 섬세한 일을 하는 어떤 이는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겁주기 정도로 치부한 것이다. 그만큼 각오를 다지고 배워야 한다는 주문 같은 의미 정도였을 뿐이었다.

기본자세 배우기가 본격화되면서 겁주기는 엄포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20파운드의 활을 처음 당긴 후 급격하게 커진 엄지손가락은 주무르고 얼음물 찜질까지 했지만 붓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글씨 쓰기가 불편해지고 밥 먹기도 어려웠다.

혹 잘못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인터넷도 뒤졌지만 당연히 거쳐야 하는, 다른 방법은 없단다. 각지를 끼었다지만 맨살에 닿는 시위의 장력이 고스란히 엄지손가락으로 전해져 물집이 잡히기를 반복했다. 굳은살이 박혀 조금 수월하다 싶을 때에야 각지 안쪽으로 가죽을 대어주었다. 그 역시 35파운드 활을 당긴 이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 상암정에서 습사를 하고 있는 황학정 궁국교실 수강생들. <사진=헤드라인뉴스>

엄지손가락의 고통은 궁력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다. 국궁은 양궁과 달리 엄지손가락에 시위를 걸어 당긴다. 이때 활을 당기는 힘을 가리켜 궁력이라 한다.

처음 활을 당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30파운드대를 넘지 못한다. 이를 남성은 45~50파운드까지, 여성은 40~45파운드까지 올리라는 게 사범의 주문이었다. 화살을 145미터 밖의 과녁까지 보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물론 30파운드대의 활로도 화살을 과녁까지 보낼 수 있지만 그만큼 화살이 날아가는 포물선의 각도는 커지게 된다. 높은 하늘을 향해 조준해야 하고 명중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전통 국궁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활의 힘은 파운드로 표기된다. 양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용수철저울로 2자6치(78.8㎝)를 당겼을 때의 무게를 기준으로 측정한다. 즉 40파운드의 활을 당기기 위해서는 엄지손가락에 약 18㎏의 장력이 가해진다. 45파운드 활은 약 20㎏, 50파운드 활은 약 22.7㎏의 힘이 요구된다.

▲ 황학정 궁국교실 수강생들이 한강고수부지 상암정에서 습사를 하고 있다. <사진=헤드라인뉴스>

두세 달에 걸쳐 매일 빈활 당기기가 되풀이됐다. 22파운드 활에서 시작해 한 달 보름여쯤이 흘렀을 무렵 40파운드의 활까지 당길 수 있었다. 일주일에 평균 3파운드씩의 궁력을 키운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자세가 틀렸단다. 시위를 잡은 각지손을 지적받고 교정하니 무려 5파운드가 내려갔다. 자세 교정은 한 달쯤 후 50파운드에서 또 지적됐다. 역시 47파운드로 내려 잡고 다시 자세를 만들어야 했다.

이외에도 힘에 부친 활을 당기면서 배가 나오고 상체로 뒤로 제켜지는가 하면 활을 잡은 줌손의 어깨가 올라가는 등 우스꽝스러운 동작들이 반복됐고, 그때마다 지적받기가 되풀이됐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는 탓에 상체 곳곳에서 통증도 뒤따랐다. 목덜미는 뻐근하고 옆으로 누워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어깨가 아팠다. 등뼈에서 어깻죽지 쪽으로도 파스가 붙었다.

활쏘는 기본자세, 즉 궁체는 그 사람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보여주었다. 평소 운동으로 몸을 유연하게 가꾼 이들은 사범이 요구하는 자세가 쉽게 나왔다. 상대적으로 여성들도 남성들보다 자세가 좋았다.

반면 별반 운동도 하지 않고 몸 관리에도 소홀한 채 나이만 먹은 이들은 궁력 키우기는 물론 궁체 잡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다른 이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악력기가 동원되고 팔 굽혀펴기 등의 운동으로 보완해야만 했다.

어느 운동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범들은 기본자세를 특히 강조했다. 몸에 올바로 익히지 않을 경우 나쁜 버릇으로 굳어져 종국에는 활을 더 이상 쏠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른바 ‘활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자세에서부터 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리기까지의 모든 동작들이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사유수(射流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궁력이 일정 수준까지 올랐어도 기본자세가 바르지 않은 이들이 사대에 설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국궁교실 수료 후에 사대에 서는 순서는 사람마다 시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어느 정도 기본자세가 잡히고 안정적으로 45파운드 이상의 활을 당길 수 있을 즈음 개인별 신체조건에 맞춰 화살 길이와 무게를 측정하고 고침과 주살 연습이 병행됐다. 지루한 빈활 당기기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고침은 2m 내외, 주살은 15m 거리에서 1m이상의 눈높이를 향해 화살을 쏘아 보내는 것이다. 활 시위에 화살을 메겨 당기는 동작에 이어 화살을 똑바로 날려 보내기 위한 과정이다.

서울 황학정 사대에서 습사를 하고 있는 신사(新射). <사진=헤드라인뉴스>
서울 황학정 사대에서 습사를 하고 있는 신사(新射). <사진=헤드라인뉴스>

궁력도 키웠고 궁체도 어느 정도 잡혔으니 이쯤이야 하며 자신만만했건만 여기에도 복병이 숨어있었다. 화살이 활을 떠나는 것을 가리켜 이전(離箭)이라는 하는데 이때 여지없이 시위에 팔뚝을 맞거나 빰을 맞은 경우가 허다했다.

처음 팔뚝을 맞았을 때에는 그다지 아픔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시퍼렇게 멍이 든 팔뚝은 보기에도 흉했다. 그러나 뺨을 맞았을 때는 또 달랐다. 우선 눈물이 핑 돌고 심할 경우 마치 누군가에게 크게 얻어맞은 듯 벌겋게 피멍이 들어 섬뜩하기까지 했다.

황학정에서 발행한 『국궁교본』에 따르면 빰을 맞게 되는 것은 각지손의 동작이 부실했든가 턱끝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고, 팔뚝을 맞는 것은 활을 잡은 줌손이 부실했든가 중구미가 제대로 엎어지지 않은 탓이다. 한마디로 아직 자세가 불량하다는 것이다.

옛 속담에 ‘활은 임금님 빰도 친다’는 말이 있다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매순간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긴장감으로 활을 배울 수밖에….

사대에서 동쪽으로 버티고 선 과녁 위의 구름 사이로 얼핏 새해 첫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구사들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하늘로 솟구쳤다. 저마다 높낮이는 다르지만 과녁을 향해 뻗어나가는 힘이 느껴졌다.

입가에 고은 시인의 ‘화살’이라는 시가 맴돌았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과녁의 붉은 눈과 기싸움을 벌였던 신사들도 첫 사대에서 예를 갖춘 후 온몸을 내던진다.

“활 배웁니다.”

이제야 진정한 활 배우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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