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의 3등급…아랫목에 잘 보이기보다는 아궁이에 잘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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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의 3등급…아랫목에 잘 보이기보다는 아궁이에 잘 보여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1.1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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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⑤

[한정주=역사평론가] 한 인물의 삶을 기록한 ‘전기(傳記)’의 형식과 방법을 취해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사회비판과 개혁의식을 피력했던 문인의 대표주자는 단연 박지원이다.

『연암집』의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실려 있는 ‘마장전(馬駔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민옹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광문전(廣文傳)’ 등이 모두 그렇다.

이 가운데 ‘마장전’을 읽어 보겠다. 세 명의 미치광이가 서로 벗을 삼아 세상을 피해 거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아첨에 상중하의 등급을 매겨 상급의 아첨과 중급의 아첨과 하급의 아첨의 행태를 보여주며 아첨하는 무리들을 조롱하는 이야기가 날카롭기가 송곳과 같은 박지원의 풍자 정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 거간꾼이나 집주릅이 손뼉을 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짓이나 관중(管仲)과 소진(蘇秦)이 닭·개·말·소의 피를 바르고 맹세했던 일은 신뢰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어렴풋이 헤어지잔 말만 들어도 가락지를 벗어던지고 수건을 찢어 버리고 등잔불을 돌아앉아 벽을 향하여 고개를 떨구고 울먹거리는 것은 믿을 만한 첩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요, 가슴속의 생각을 다 내보이면서 손을 잡고 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믿을 만한 친구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콧잔등(準)-음은 ‘절(巀)’이다-까지 부채로 가리고 좌우로 눈짓을 하는 것은 거간꾼들의 술책이며 위협적인 말로 상대의 마음을 뒤흔들고 상대가 꺼리는 곳을 건드려 속을 떠보며 강한 상대에겐 협박을 하고 약한 상대는 짓눌러서 동맹한 나라들을 흩어 버리거나 분열된 나라들을 통합하게 하는 것은 패자(覇者)와 유세가들이 이간하고 농락하는 권모술수이다.

옛날에 가슴앓이 하는 이가 있어 아내를 시켜 약을 달이게 하였는데 그 양이 많았다 적었다 들쑥날쑥하였으므로 노하여 첩을 시켰더니 그 양이 항상 적당하였다. 그 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창구멍을 뚫고 엿보았더니 많으면 땅에 버리고 적으면 물을 더 붓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첩이 양을 적당하게 맞추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귀에 대고 소근거리는 것은 좋은 말이 아니요, 남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은 깊은 사귐이 아니요, 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는 것은 훌륭한 벗이 아니다.

송욱(宋旭), 조탑타(趙闒拖), 장덕홍(張德弘)이 광통교(廣通橋) 위에서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탑타가 말하기를 “내가 아침에 일어나 바가지를 두드리며 밥을 빌다가 포목전에 들렀더니 포목을 사려고 가게로 올라온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포목을 골라 혀로 핥아 보기도 하고 공중에 비쳐 보기도 하면서 값은 부르지 않고 주인에게 먼저 부르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나중에는 둘 다 포목은 잊어버린 채 포목 장수는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구름이 나왔다고 흥얼대고 사러 온 사람은 뒷짐을 지고 서성대며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더군요” 하니 송욱이 말하기를 “너는 사귀는 태도만 보았을 뿐 사귀는 도(道)는 보지 못했다” 하였다.

덕홍이 말하기를 “꼭두각시놀음에 장막을 드리우는 것은 노끈을 당기기 위한 것이지요” 하니 송욱이 말하기를 “너는 사귀는 겉모습만 보았을 뿐 사귀는 도는 보지 못했다. 무릇 군자가 사람을 사귀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법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한 가지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러기에 나이 삼십이 되었어도 벗 하나 없다. 그러나 그 도만은 내 옛적에 들었노라. 팔이 밖으로 펴지지 않는 것은 술잔을 잡았기 때문이지” 하니 덕홍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시경(詩經)』에도 본래 그런 말이 있지요. ‘우는 학이 그늘에 있으니(鳴鶴在陰) / 그 새끼가 화답한다(其子和之) / 내게 좋은 벼슬이 있으니(我有好爵) / 내가 너와 더불어 같이한다(吾與爾縻之)’ 하였는데 아마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하였다.

송욱이 말하기를 “너만 하면 벗에 대한 도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내가 아까 그 한 가지만을 알려 주었는데 너는 두 가지를 아는구나. 천하 사람이 붙따르는 것은 형세요, 모두가 차지하려고 도모하는 것은 명예와 이익이다. 술잔이 입과 더불어 약속한 것도 아니건만 팔이 저절로 굽혀지는 것은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형세이다. 학과 그 새끼가 울음으로써 서로 화답하는 것은 바로 명예를 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벼슬을 좋아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붙따르는 자가 많아지면 형세가 갈라지고 도모하는 자가 여럿이면 명예와 이익이 제 차지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오랫동안 이 세 가지를 말하기를 꺼려 왔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은유적인 말로 네게 알려 주었는데 네가 이 뜻을 알아차렸구나.

너는 남과 더불어 교제할 때 첫째, 상대방의 기정사실이 된 장점을 칭찬하지 말라. 그러면 상대방이 싫증을 느껴 효과가 없을 것이다. 둘째, 상대방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지 말라. 장차 행하여 거기에 미치게 되면 낙담하여 실망하게 될 것이다. 셋째, 사람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남을 제일이라고 일컫지 말라. 제일이란 그 위가 없단 말이니 좌중이 모두 썰렁해지면서 기가 꺾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귀는 데에도 기법이 있다. 첫째, 상대방을 칭찬하려거든 겉으로는 책망하는 것이 좋고 둘째, 상대방에게 사랑함을 보여 주려거든 짐짓 성난 표정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셋째, 상대방과 친해지려거든 뚫어질 듯 쳐다보다가 부끄러운 듯 돌아서야 하고 넷째,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꼭 믿게끔 하려거든 의심하게 만들어 놓고 기다려야 한다.

또한 열사(烈士)는 슬픔이 많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때문에 영웅이 잘 우는 것은 남을 감동시키자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기법은 군자가 은밀하게 사용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처세(處世)에 있어 어디에나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였다.

탑타가 덕홍에게 묻기를 “송 선생님의 말씀은 그 뜻이 너무나 어려워 마치 수수께끼와 같다.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니 덕홍이 말하기를 “네까짓 게 어찌 알아? 잘한 일을 가지고 성토하여 책망하면 이보다 더한 칭찬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 노여움이 생기는 것이요, 꾸지람을 하는 과정에서 정이 붙는 것이므로 가족에 대해서는 이따금 호되게 다루어도 싫어하지 않는 법이다. 친한 사이일수록 거리를 둔다면 이보다 더 친한 관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미 믿는 사이인데도 오히려 의심을 품게 만든다면 이보다 더 긴밀한 관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술이 거나해지고 밤이 깊어 뭇사람은 다 졸고 있을 때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가 그 남은 취기(醉氣)를 타서 슬픈 심사를 자극하면 누구든 뭉클하여 공감하지 않는 자 없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귀는 데에는 상대를 이해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즐겁기로는 서로 공감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따라서 편협한 사람의 불만을 풀어 주고 시기심 많은 사람의 원망을 진정시켜 주는 데에는 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다. 나는 사람을 사귈 때 울고 싶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31년 동안 나라 안을 돌아다녀도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

탑타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충(忠)으로써 사귐에 임하고 의(義)로써 벗을 사귀면 어떻겠는가?” 하니 덕홍이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기를 “네 말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비루하구나.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 거냐? 너는 듣거라. 가난한 놈이란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한없이 의(義)를 사모한다. 왜냐하면 저 아득한 하늘만 봐도 곡식을 내려 주지 않나 기대하고, 남의 기침 소리만 나도 무엇을 주지 않나 고개를 석 자나 빼고 바라기 때문이다.

반면에 재물을 모아 놓은 자는 자신이 인색하단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을 끊자는 것이다. 그리고 천한 자는 아낄 것이 없기 때문에 충심(忠心)을 다하여 어려운 것도 회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을 건널 때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지 않는 것은 떨어진 고의를 입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레를 타고 다니는 자가 갖신에 덧신을 껴신는 것은 그래도 진흙이 묻을까 염려해서이다. 신 바닥도 아끼거든 하물며 제 몸일까 보냐? 그러므로 충(忠)이니 의(義)니 하는 것은 빈천한 자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부귀한 자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하였다.

탑타가 발끈하여 정색하면서 말하기를 “내 차라리 세상에 벗이 하나도 없을지언정 군자들과는 사귀지 못하겠다” 하고서 이에 서로 의관을 찢어 버리고 때 묻은 얼굴과 덥수룩한 머리에 새끼줄을 허리에 동여매고 저자에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골계선생(滑稽先生)은 우정론(友情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무를 붙이자면 생선 부레를 녹여서 붙이고, 쇠를 붙이자면 붕사(鵬砂)를 녹여서 붙이고, 사슴이나 말의 가죽을 붙이자면 멥쌀밥〔粳飯〕을 이겨서 붙이는 것보다 단단한 것이 없음을 내 안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사귐에 있어서는 떨어진 틈이란 것이 있다.

연(燕) 나라와 월(越) 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틈이 있는 것이 아니요, 산천(山川)이 가로막고 있어야 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무릎을 맞대고 함께 앉아 있다 하여 반드시 밀접한 사이가 아니요, 어깨를 치고 소매를 붙잡는 관계라 하여 반드시 마음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이에도 틈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상앙(商鞅)이 장황한 말을 늘어놓자 효공(孝公)이 꾸벅꾸벅 졸았고, 범저(范雎)가 성내지 않았다면 채택(蔡澤)이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밖으로 나와서 상앙을 꾸짖어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으며 채택의 말을 전하여 범저가 화를 내도록 만든 사람이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공자(公子) 조승(趙勝 평원군(平原君))이 소개의 역할을 하였다. 반면에 성안후(成安侯 진여(陳餘))와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은 사귐에 있어 조금의 틈도 없이 너무나 절친하게 지냈으므로 그들 사이에 한번 틈이 생기자 누구도 그들을 위해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중히 여길 것은 틈이 아니고 무엇이며 두려워할 것도 틈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첨도 그 틈을 파고들어가 영합하는 것이요, 참소도 그 틈을 파고들어가 이간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잘 사귀는 이는 먼저 그 틈을 잘 이용하고, 사람을 잘 사귈 줄 모르는 이는 틈을 이용할 줄 모른다.

성격이 강직한 사람은 외골수여서 자신을 굽히고 남에게 나아가지도 않고 우회적으로 말을 하지도 않으며 한번 말을 꺼냈다가 의견이 합치하지 않으면 남이 이간질하지 않아도 제풀에 막히고 만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찍고 또 찍어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어디 있으리”라고 했으며 “아랫목에 잘 보이기보다는 아궁이에 잘 보여라”라고 했는데,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아첨을 전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 몸을 정제(整齊)하고 얼굴을 다듬고 말을 얌전스레 하고 명예와 이익에 담담하며 상대와 사귀려는 마음이 없는 척함으로써 저절로 아첨을 하는 것이 상첨(上諂)이다.

다음으로 바른 말을 간곡하게 하여 자신의 속을 드러내 보인 다음 그 틈을 잘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것이 중첨(中諂)이다.

말굽이 닳도록 조석(朝夕)으로 문안(問安)하며 돗자리가 떨어지도록 뭉개 앉아 상대방의 입술을 쳐다보며 얼굴빛을 살펴서 그 사람이 하는 말마다 다 좋다 하고 그 사람이 행하는 것마다 다 칭송한다면 처음 들을 때에야 좋아하겠지만 오래 들으면 도리어 싫증이 난다. 싫증이 나면 비루하게 여기게 되어 마침내는 자기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이는 하첨(下諂)이다.

관중(管仲)이 제후(諸侯)를 여러 번 규합하였고 소진(蘇秦)이 육국(六國)을 합종(合縱)시켰으니 천하의 큰 사귐이라 이를 만하다. 그러나 송욱과 탑타는 길에서 걸식을 하고 덕홍은 저자에서 미친 듯이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다니면서도 오히려 말 거간꾼의 술수를 부리지 않았거늘 하물며 군자로서 글 읽는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박지원, 『연암집』, ‘마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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