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 이황① ‘물러날 퇴(退)’를 호로 삼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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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① ‘물러날 퇴(退)’를 호로 삼은 까닭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6.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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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⑪
▲ 경북 안동시 도산면 건지산 남쪽 산봉우리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황의 묘소. 전면 비문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적혀 있다. 원 안은 퇴계 이황의 초상.

[헤드라인뉴스=한정주 역사평론가] 이황은 1570년 12월8일 나이 70세로 죽음을 맞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이황은 죽기 나흘전인 12월4일 조카 이영(李甯)을 불러 특별히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것은 일찍이 병환(病患)이 위중해지자 이황이 아들 이준(李雋)에게 했던 유언과 같은 내용이었다.

“내가 죽고 난 후 조정에서 관례에 따라 예장(禮葬)을 하려고 청하면 사양해라. 또한 비석을 세우지 말고 다만 조그마한 빗돌에다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쓰고, 뒷면에는 향리(鄕里)·세계(世系)·지행(志行)·출처(出處)를 간략하게 서술하여 『가례(家禮)』에서 말한 대로 해라.

만약 이러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비명(碑銘)을 짓게 되면 고봉(高峰) 기대승 같은 이는 반드시 실제로 없던 일은 장황하게 늘어놓아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스스로 나의 뜻을 적어서 미리 명문(銘文)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자꾸 미루어 오다가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어지러이 흩어놓은 난고(亂稿) 가운데 숨어 있으니 찾아서 묘비의 명문(銘文)을 새기도록 해라. 『퇴계집(退溪集)』, ‘연보(年譜)’

여기에서 이황이 ‘일찍이 스스로 나의 뜻을 미리 적어두었다’고 말한 ‘명문(銘文)’이란 자신의 70평생을 4언 24구 96자(字)로 압축해 정리해놓은 ‘자명(自銘)’을 가리킨다.

이황은 죽고 난 후 이 자명(自銘) 이외에 자신을 미화(美化)하거나 찬양(讚揚)하는 어떤 기록도 원치 않았다. 담담하면서도 명쾌하게 자신의 삶을 술회한 ‘자명(自銘)’만이 그가 자신의 묘지에 남기고 싶었던 유일한 글이었다.

실제 현재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 건지산 남쪽 산봉우리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황의 묘소를 찾아보면, 그 묘비(墓碑)의 중앙에는 그의 유언대로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적혀 있고, 그 오른편에는 ‘퇴계선생묘갈명(退溪先生墓碣銘)’이라는 제목으로 앞서 언급한 ‘자명(自銘)’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황의 삶과 철학을 살펴볼 때, 이 ‘자명(自銘)’은-비록 아주 짧은 글이지만-그가 후세에 남기고 싶었던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크게 어리석었고 / 장성해서는 병치레 많았네 / 중년(中年)에 쌓은 학문이 얼마나 되었길래 / 만년(晩年)에 어찌 외람되게 벼슬을 받았는가? / 학문은 구하려고 할수록 더욱 아득해지고 / 벼슬은 사양하려고 할수록 얽어들었네 / 벼슬에 나아가면 가다가 넘어졌고 / 벼슬에서 물러나 숨으면 올곧았네 / 나라의 은혜에 마음 깊이 부끄럽고 / 성인의 말씀은 진실로 두렵구나 / 산은 높고도 높으며 / 물은 끊임없이 솟아 흐르네 / 너울너울 나부끼는 초복(初服)차림 으로 / 세상 사람의 비방에서 벗어났네 / 나의 소회(所懷) 이로써 막히니 / 누가 내 패옥(佩玉)을 즐겨 구경할까 / 내가 옛 사람을 생각하니 / 진실로 내 마음에 맞는구나 / 어찌 다음 세상을 알겠는가 / 지금도 알지 못하는데 / 근심 가운데 즐거움이 있고 /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네 / 저 세상으로 돌아가며 생(生)을 다하니 / 여기에서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퇴계전서』, ‘자명(自銘)’

그런데 이황은 이 ‘자명(自銘)’의 7구와 8구에서 자신이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던 뜻은 바로 ‘물러날 퇴(退)’ 한 글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즉 “벼슬에 나아가면 가다가 넘어졌고(進行之跲), 벼슬에서 물러나 숨으면 올곧았네(退藏之貞)”라고 적었다.

벼슬에 ‘나아감(進)’은 자신의 본성과 맞지 않아 몸을 상하게 만들었던 반면 벼슬에서 ‘물러남(退)’은 자신의 마음과 같아 올곧은 삶을 지켜주었다는 얘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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