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골빵집의 소리 없는 경제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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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골빵집의 소리 없는 경제혁명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6.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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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도 순환도 않는 돈이 자본주의 모순의 근원
▲ 와타나베 이타루 씨 가족과 다루마리에서 일하는 스태프들.

일본 변방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빵집주인의 소리 없는 경제혁명에 일본 열도가 주목하고 있다.

오카야마 현 북쪽의 가쓰야마라는 이름도 생소한 시골마을 빵집주인이자 제빵사인 와타나베 이타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원래 막연히 시골에 사는 농부를 꿈꾸다 서른이 넘어서야 간신히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취직했다.

동경하던 시골과 농사에 관련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벅찼던 것도 잠시 원산지 허위표기니 뒷돈 거래니 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회사에 염증과 회의를 느꼈다.

그는 점차 삶의 진정성을 갈구하며 자신의 내면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천연균을 연구하셨던 할아버지, 마르크스를 탐닉하셨던 아버지. 이들의 역량을 물려받은 그는 ‘작아도 진정한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마침내 빵집을 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부정이 판을 치는 세태가 싫어 ‘바깥’ 세상으로 탈출하려고 제빵 기술을 배웠는데, 그 ‘바깥’ 세상이어야 할 빵집 공방마저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가혹한 노동과 부조리한 경제구조, 위협받는 먹거리…. 이런 실상을 접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삶의 철학은 더욱 굳건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빵집 ‘다루마리’에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 서툰 작은 정의감을 실천하게 된다.

신간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는 와타나베 이타루가 기존 사회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활도 지켜나가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르크스 강의를 9강에 걸쳐 펼쳐내며 ‘마르크스’와 ‘천연균·발효’라는 두 영역을 조화롭게 접목시키고 있다. 빵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균들이 들려주는 목소리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의 인물인 마르크스의 목소리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21세기 일본 도쿄와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9세기 영국 런던의 노동현실을 비교한다. 성인은 물론 어린아이들마저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가혹한 노동환경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품의 조건, 가격의 비밀, 임금의 정체, 이윤의 탄생과정, 기술혁신의 무용(無用) 등도 마찬가지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즉 그들의 균형은 ‘순환’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균의 작용에 의한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스트처럼 인공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음식으로 바꿔버린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인 것이다.

이러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은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 나아가 싸구려 먹거리는 먹거리의 안전을 희생시키고 사용가치를 위장함으로써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귀속되어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간다.

“곡물 및 모든 식료품의 가격이 싸야 산업은 이익을 얻는다. 왜냐하면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소가 무엇이건 간에 가격이 비싸지면 그로 인해 틀림없이 노동력도 비싸지기 때문이다. (중략) 식료품 가격은 반드시 노동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싸지면 노동의 가격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자본론』1권 4편 10장

또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노동은 지극히 단순해져서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된다.

“기술혁신은 결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마르크스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부속물로서의 그에게는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술만이 요구된다.” 『공산당 선언』

그는 『자본론』 공부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이것을 ‘부패하는 경제’라 명명한다.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부패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차(금융)를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결국 이러한 ‘부패와 순환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는 ‘부패하는 경제’ 속에서 우리는 삶이 가진 본디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빵집 다루마리는 사람들로부터 ‘희한한 빵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카야마 역에서 전철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산 속의 빵집. 고택에 붙어사는 천연균으로 만든 주종으로 발효시킨 빵을 만들며, 그 빵의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사흘은 휴무,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는다.

이것은 제대로 된 먹거리에 정당한 가격을 붙여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고 만드는 사람이 숙련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으려면 만드는 사람이 잘 쉴 수 있어야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다루마리의 경영 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일반적인 경영과 마케팅 성공 잣대를 무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채 최고의 빵을 만들며, 부패와 순환작용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시골빵집에서 찾아낸 ‘부패해 순환하는 경제’의 핵심은 발효와 순환, 이윤 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4가지로 다루마리는 이 모든 것을 지향하며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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