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상식조차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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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상식조차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힌다면”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3.10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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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⑫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⑫

[한정주=역사평론가] 다시 조선 지식인들의 ‘우언과 우화’로 돌아와 보자. 불운한 삶과 세상을 풍자하는 글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이옥 또한 온갖 생물의 힘을 빌어서 인간의 추악한 행태를 조롱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자신의 입만 사랑할 줄 알았지 정작 중요한 자신의 몸뚱이는 사랑할 줄 모르는 벼룩의 존재를 빌어 말단의 이로움만 좇다가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물욕(物慾)을 신랄하게 꼬집은 ‘벼룩(蚤)’이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한다.

“경금자(絅錦子)는 해가 들어가면 일을 그만두어 저녁나절에는 느긋한 마음으로 지낸다. 밤이 되어 종이 바른 창에 달빛이 밝을 무렵 베이불에 바람이 불어 서걱댄다. 울타리의 파리처럼 이리저리 부산하게 굴지 않고 다만 장자의 호접처럼 자득하여 정신을 평온하게 하고 온몸을 풀어놓아 화서(華胥: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 출몰하였다.

그런데 홀연 어떤 놈이 부들자리의 틈새에서 나와 대자리와 홑이불에서 사각사각 소리낸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소리가 마치 기장이 서걱대며 떨어지는 것 같다.

이윽고 모발 끝을 살금살금 타고 올라 지체(肢體) 사이에서 용맹을 떨치려고 하여 왼쪽 어깨 부근에 멈추어선 웅크렸다. 만약 은바늘로 제대로 꿰매지 못한 곳이 있으면 선뜻 살갗으로 들어가 장미꽃을 잘못 뒤흔든 것처럼 붉게 살가죽을 뚫어서 영(榮: 혈)이 놀라고 위(衛: 기)가 자지러져 사람으로 하여금 버틸 수 없게 하리라.

이에 손을 쳐들어 내리치고 문질러서 겨드랑이까지 이르러선 문대고 비비고 하다가 마침 엄지손가락을 사용하여 붙잡았다. 벌레는 손톱 아래서 숨을 몰아쉬는데 목숨이 여전히 깔딱깔딱 붙어 있다. 나는 이 놈이 이익을 좇느라 앙화가 닥치리란 것을 모르는 게 불쌍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그 등을 두드리며 꾸짖었다.

‘너는 미물로서 사람들이 거처하는 침상과 자리를 네 소굴로 아는구나. 마침 내 성격이 게을러서 석 달 동안 쓸고 닦지 않았으니 네가 목마르면 내 땀을 들이키고 살갗의 때도 핥을 만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네게 대해 후덕하지 못하다고 할 수 없도다.

그렇거늘 네 놈은 어째서 질릴 줄도 모르고, 감히 나를 침범하느냐. 내 피는 술이 아니거늘, 어찌 네가 따라 마시는 것을 허용한단 말인가? 내 살결은 병들지도 않았거늘 어찌 네게 침을 맞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그게 바로 네 마음인가 보다. 너는 사람의 고혈을 빨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구멍을 뚫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 티끌 속에 서식하고 틈 사이에 들어차서는 한밤에는 으스대고 한낮에는 숨어 지내지. 그러다가 형세를 타서 나아가는 것은 굶주린 쥐가 욕심이 많은 것과 같고 이익을 보면 재빨리 달려가는 것은 가을 모기가 나면서부터 아는 것과 같구나.

봉합선의 틈 하나라도 얻으면 거기를 근거로 삼고 바늘땀 하나라도 틈이 있으면 모두 다 잘 알아차려서는 주둥이를 쓸 때에 반드시 그 틈새를 이용한다. 이것은 비록 옛날의 편작(扁鵲)과 유부(兪跗) 같은 명의가 침을 놓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능숙하고도 신중하게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네 놈은 다만 사람에게 피와 고기가 있다는 사실만 알지 사람의 손가락과 손톱이 무서운 줄을 모르는구나.

개미가 진 치듯 모기가 모이듯 벌이 뚫듯 개구리가 들끓듯 사람의 고혈을 빼앗아 제 위장을 채우려 하다니! 배불리 먹은 놈은 마비되고 급히 가려는 자는 자빠지니 네가 사람의 고기를 먹어 피로 삼으면 사람도 네 삭은 뼈(껍질)에서 피를 내게 된다. 그러니 네가 입과 배를 채우려고 하는 것은 곧 네 몸을 주는 짓이다.

아아, 앞의 일을 두고 본다면 너는 어이 그렇게 지혜가 있느냐? 뒤의 일을 두고 논하면 너는 또 어이 그리 멍청하단 말이냐? 어쩌면 너는 네 입만을 사랑하고 네 몸뚱이는 사랑하지 않아서 허겁지겁 말리(末利)를 좇다가 그 본진(本眞)을 잃어버리는 자가 아니냐? 아니면 지혜가 밝지 못하여서 물욕(物欲)에 덮여 눈앞이 어두운 자가 아니냐? 나는 네 배를 갈라 네 실상을 따져보아야 하겠다.’

그리고는 손톱으로 눌러 치자, 펄쩍 튀는 소리가 난다. 동자를 깨워 재촉하여 등잔불을 붙여 살펴보니, 그 내장은 볼 수가 없었고 다만 복사꽃잎처럼 붉은 피만 보였다.” 이옥, ‘벼룩(蚤)’

성대중의 『청성잡기』 중 ‘성언(醒言)’에 나오는 우언 한 편을 읽어보면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좋은지 다투는 새들의 경쟁에서조차 청탁과 뇌물이 개입하자 맑고 고운 꾀꼬리의 목소리는 ‘구슬픈 소리’로 둔갑하고 나지막해서 그윽한 비둘기의 목소리는 ‘음탕한 소리’로 매도당하고 탁해서 듣기 거북한 무수리의 목소리는 ‘웅장한 소리’로 변신한다.

너무나 확실한 상식조차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힐 수 있다면 도대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기준과 순위 매기기는 과연 공정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라고 주문하는 듯한 우언이다.

“꾀꼬리와 비둘기 그리고 무수리는 서로들 제 목소리가 좋다고 승부를 다퉜다. 승부가 나지 않자 상의한 끝에 어른을 찾아가 심사를 받기로 합의했다. 모두들 ‘황새라면 괜찮다!’고 말했다.

꾀꼬리는 제 목소리가 신비하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 터라 그늘 짙은 곳에서 쉬면서 웃기나 했고 비둘기도 승부에 크게 괘념치 않고서 느릿느릿 걸으면서 흥얼흥얼 노래나 불렀다.

반면 무수리는 제가 생각해도 저들보다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뱀 한 마리를 부리에 물고서 다른 새들 몰래 먼저 황새를 찾아갔다. 뱀을 먹으라고 건네면서 개인 사정을 말하고 청탁을 넣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터라 황새는 한입에 뱀을 꿀꺽 삼키고서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그저 그것들과 함께 오기나 해!’

셋이 함께 황새한테 갔다. 먼저 꾀꼬리가 목소리를 굴려 꾀꼴꾀꼴 노래를 불렀다. 황새가 주둥아리를 목으로 집어넣으면서 살짝 음미해보더니 말했다. ‘맑기는 맑은데 소리가 구슬픈 데 가깝다!’

그 뒤를 이어서 비둘기가 구구구 소리를 냈다. 황새가 모가지를 땅바닥으로 내리면서 슬며시 웃고 말했다. ‘그윽하기는 그윽한데 음탕함에 가깝다!’

맨 마지막으로 무수리가 모가지를 쭉 빼고서 꽥 소리를 질렀다. 황새가 꽁무니는 쳐들고 빠르게 외쳤다. ‘탁하기는 탁하지만 소리가 웅장함에 가깝다!’

고과(考課)하는 법에는 뒷부분의 평가가 우수한 사람이 이긴다. 그리하여 무수리는 제가 이겼다고 생각하고 높은 데로 올라가 사방을 휘둘러보면서 부리를 떨며 쉼 없이 소리를 질렀다.

황새도 뒤꿈치를 높이 쳐들고 먼 곳을 바라보며 우쭐댔다. 꾀꼬리와 비둘기는 부끄럽기도 하고 기가 꺾이기도 하여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성대중, 『청성잡기』, ‘성언(醒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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