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인지 보리인지도 분간 못한 사람에게 사는 이치 따진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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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인지 보리인지도 분간 못한 사람에게 사는 이치 따진대서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3.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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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⑬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⑬

[한정주=역사평론가] 짐승인 말(馬)과 기남(己男)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해 전개하면서 머리를 빗는 일을 가장 싫어하는 자신의 아이들의 습관을 깨우치고자 한 이경전의 글은 엄격하고 딱딱한 가르침보다 차라리 재미있는 ‘우언(寓言)’을 빌어 자식들을 가르친 옛 사람의 지혜로움을 일깨워 준다.

“사람에게 머리털이 있는 것처럼 말에게는 갈기털이 있다. 세상에서 하는 말이 남에게 말을 맡길 때 ‘하루 먹을 콩을 주지 않아도 좋으나 하루에 빗겨야 할 빗질은 잘 해다오’라고 부탁한다고 한다. 이것은 말갈기를 빗질하는 것보다 절실한 바람이 말에게는 없음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머리가 돗자리를 짠 것처럼 봉두난발에다 때가 소똥같이 덕지덕지 끼어 있으며 머리털에 서캐 알이 엉겨 붙어서 실로 꿰맨 것처럼 뽀얗게 보인다고 하자. 낮에는 망건으로 머리를 감싸서 요행히 남들이 보지 못하지만 밤이 되면 밤새도록 긁어대기 때문에 귀밑머리와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딱지가 앉는다. 그럼에도 빗질해서 다듬을 줄을 모르니 사람이 말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여기에 말 두 마리가 있다고 치자. 하나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아 아침저녁으로 갈기를 빗질해주기에 털이 번들번들하여 빛이 나서 보기에서 멋지다. 다른 하나는 주인이 사랑하지 않고 그저 물건을 싣거나 타고 다니며 꼴이나 베어다 준다. 어쩌다 마당에 끌어다 놓으면 말은 바로 땅바닥에 뒹굴면서 제 스스로 긁는다.

그러다 보니 진흙과 먼지는 머리와 등짝을 뒤덮고 궁둥이는 돼지 궁둥이 꼴로 변해 더 이상 말다운 꼴이 없다. 만약 말이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가려움증을 하소연하면서 빗질은 하지 않고 그저 콩과 꼴만 던져주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전에 나는 다지동(多枝洞)에서 기남(己男)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두발 상태는 저런 꼴을 하고 있었지만 벙거지를 쓰고서 고을의 서원(書員)이 되어 돌아다녔다. 내가 그에게 ‘당신은 평상시 한 달에 몇 번이나 빗질을 하는가?’ 물었더니 그는 ‘저는 빗질을 성실하게 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한 번씩 빠짐없이 빗어서 그냥 지나간 해가 거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선 상당히 우쭐하는 태도가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비웃고 말았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어둡고 어리석어 콩인지 보리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므로 사람 사는 이치를 가지고서 꾸짖을 상대가 아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저 인구수를 헤아리는 데 숫자나 채울 평범한 사람들이 게으름이 습관이 되어 날이 저물기도 전에 먼저 잠들고 아침 해가 높이 뜬 이후에야 비로소 일어나서 불쑥 밥 내오라 재촉하여 먹고 의관을 입고서 집 밖으로 나온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같이 어렸을 적에 했던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서 그런 행동을 한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둘 있는데 그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머리를 빗는 일이다. 온갖 방법으로 달래고 혼내고 하건마는 한 달에 한 번 빗질할 때도 있고 열흘에 한 번 빗질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설렁설렁 꾸중이나 모면하고는 일어선다.

나는 아이들의 속내를 모르겠다. 아무래도 총명함이 부족하여 때를 벗기면 머리가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져서 자기에게 이로운 줄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밖에 나가 새 잡을 궁리만 하느라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을 마음이 없어 그러는 것일까?

나는 정말 걱정스럽다. 아이들의 기질을 바꾸고 싶다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기에 아이들에게 독서를 열심히 하라고 권했다. 쉬지 않고 열심히 독서하여 점차 흥미를 붙여 깊이 들어간다면 마음도 조금씩 넓어지고 정신도 조금씩 깨이리라.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여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역사책을 앞에 놓고 순임금과 같은 인물이 되려는 의욕을 내어 학문에 힘을 기울이면서 말(馬)의 갈기를 빗질해주는 마음으로 자신을 깨우치고 어둡고 어리석은 기남이 되지 않겠다고 자신을 경계하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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