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벽(癖)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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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벽(癖)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10.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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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⑦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⑦

[한정주=역사평론가] 이옥은 자신을 가리켜 담배를 몹시 사랑해 즐기는 고질병이 있는 사람이라 하면서 스스럼없이 남들이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령을 부려 자료를 정리하여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경전’이라는 뜻의 『연경(烟經)』을 저술해 세상에 내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지나치게 탐닉하는 일종의 ‘기호벽(嗜好癖)’을 이들을 마치 변호라는 듯한 한 편의 글을 『연경』 속에 남겨놓았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은 병이라고 여겨 고질병(癖)이라고 말한다. 고질병에는 밥을 즐기는 고질병, 술을 즐기는 고질병, 떡을 즐기는 고질병, 엿을 즐기는 고질병, 밀것을 즐기는 고질병, 과일을 즐기는 고질병, 오이를 즐기는 고질병, 두부를 즐기는 고질병 들이 있다. 하지만 담배에 고질병이 든 사람들도 많다.

옛날 정승 한 사람은 약관 시절에 그 비싼 서초(西草)를 날마다 두 근씩 피웠다. 또 판서 한 사람은 늘 담뱃대 둘을 번갈아 내오게 하여 피웠는데도 대통이 잠시도 식은 때가 없었다.

근자에 어떤 정승과 어떤 대장(大將)은 모두 새로운 모양을 한, 특별히 제작한 대통을 사용하였다. 그 대통은 거위 알의 껍질과도 흡사했다.

또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있는데 하루 종일 담배를 멈추지 않고 피웠다. 그런데도 한 번도 담배에 취하거나 현기증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담배에는 날 때부터 즐기는 고질병이 있는 것 아닐까?

담배가 처음 들어온 때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백 명에 한 둘이었고,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열에 한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들은 모두 피우고 부녀자들 역시 모두 피우며 천한 사람들까지도 모두 피운다. 온 세상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귀한 사람들도 고질병이 많고 시름겨운 사람들도 고질병이 많으며 한가로운 사람들도 고질병이 많다. 담배에 고질병이 든 사람이 너무도 많다. 내가 들으니 연경(燕京)에는 부녀자들이 대장부들보다 더 심하게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이옥, 『연경』, ‘담배벽(烟癖)’

또한 고상하고 속된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자신의 취미와 기호 ‘괴석기(怪石記)’라는 한 편의 글에 옮겨 담아놓은 정동유(1744〜1808년) 역시 완물(玩物)을 상지(喪志), 곧 군자와 사대부의 뜻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보았던 시대의 지배적 시각과는 다르게 완물(玩物)을 긍정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내가 평상시 취미로 즐기는 것을 따져보면 괴상하게도 속된 것이 많다. 먹거리 중에는 엿이나 생선과 육류를 좋아하고 육류도 기름진 것을 편식한다. 의관은 반드시 유행에 맞는 것을 입는다. 꽃은 붉고 농염한 것을 좋아하고 그림은 완상할 만한 것이라야 한다.

음악은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속악(俗樂)이라도 종일 참고 듣는다. 문장은 관각(館閣)의 화려한 것을 보기 좋아하고 시는 유우석(劉禹錫)과 백거이(白居易)이 배울지언정 가도(賈島)나 노동(盧仝)은 좋아하지 않는다.

글씨는 필진도(筆陣圖)나 초결(初訣) 등의 서체로 마구잡이로 벽에다 쓰지만 그냥 둘 뿐 굳이 없애지 않는다.

나날이 쓰는 물건이 속된 것을 두루 사용하여 이러한 것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소나무는 늠름하고 기굴한 것을 좋아하며 바위는 괴이하게 생긴 것을 좋아하여 무릇 사납게 깎이고 구불구불서리며 우묵하게 입을 벌리고 영롱한 빛을 내는 것이 있으면 좋아하지 않음이 없었다.

어쩌다 이런 것을 만나면 만지작거리면서 좋아하여 침식을 잊을 지경이었다. 늠름하고 기굴한 소나무나 깎이고 구불구불 서리며 우묵하게 입을 벌리고 영롱한 빛을 내는 바위는 이른바 기이하면서도 속된 것에 맞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 성품의 벽이 이 두 가지 사물과 우연히 어우러졌을 뿐 그 나머지 여러 가지 일은 모두 벽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동유, 『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 ‘괴석기(怪石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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