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정한 사회라고?
상태바
[칼럼] 공정한 사회라고?
  • 강기석 기자
  • 승인 2013.11.26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작성한 사람은 토머스 제퍼슨이다. 그가 기초한 독립선언서의 수많은 문구 가운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핵심 가치는 단 하나다. 바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구절이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에서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다”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독립선언서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1826년 제퍼슨이 사망할 무렵 그의 상속자들은 버지니아 주의 거대한 토지와 함께 200명이 넘는 노예들의 소유권을 물려받았다. 노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제퍼슨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실례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공정한 사회’를 언급했다.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며 개념정의를 내렸다. 또 공정한 사회에서 살게 되면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며,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다는 희망도 말했다.

이 대통령의 경축사를 들으며 제퍼슨의 이중성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 개념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언급한지 불과 며칠만에 청와대가 발표한 국무위원 및 고위공직자 명단은 국민들의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확인하게 했다.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를 비롯해 총 10명의 공직후보자 가운데 크고 작은 비리혐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공직후보자 청문회 도입 이후 위장전입과 투기의혹, 세금미납 등의 혐의는 공직후보자의 조건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이번 공직후보자들도 모두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더더욱 ‘공정한 사회’를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의 기준이 궁금할 수밖에 없어진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김태호 총리 내정자를 비롯해 3명의 공직후보자가 지난 8월말 사의를 표명했다. 별 일 없을 거라며 총리와 장관직을 수락했던 이들의 가치관은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에는 부합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 가치관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시쳇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의 가치가 청와대와 공직후보자 모두에게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특히 이러한 가치관이 적용돼 공직후보자에 내정한 이 대통령 또한 이들 측근의 비리가 보이지 않았는지, 만약 보았는데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는지도 따져 물어야 한다.

물론 ‘공정한 사회’의 정의처럼 패자에게, 넘어진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청문회 자리에서 사과 한 번 하면 고위공직에 앉을 수 있다는 이들의 사고가 문제다. 이 정도는 범죄라고 말할 수 없는, 권력과 돈을 가진 이들에게는 당연하다는 국민 가치관과 동떨어진 사고 말이다.

그래서 몇 년 전 어느 논객은 이렇게 비꼬았다.

“당신은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경험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우리 사회의 권력자이군요. 없다고요? 고위공직자 되기는 애당초 틀렸습니다.”

<2010년 9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