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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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
  • 강기석 기자
  • 승인 2013.11.26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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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인기 TV드라마 <모래시계>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우석(박상원 분)이 정체불명의 남자 여러 명에 의해 어느 야적장으로 납치됩니다.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우석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고함을 지릅니다.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

비슷한 장면은 우석의 아내(조민수 분)에게서도 연출됩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협박을 하자 똑같은 말로 제압하려 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검사의 아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유사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회원이다”라고 외치는 장면들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검사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그들입니다.

누구의 권력이 더 막강할까요? 먼저 이들 두 권력의 관계부터 보면 참으로 묘합니다. 검사들이 쥐고 있는 칼자루는 바로 입법기관인 국회, 즉 국회의원들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서슬 퍼런 검사들의 칼끝은 수많은 국회의원들에게 저승사자가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검사의 한판승입니다.

게다가 검사들은 유일하게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쥐고 있습니다. 즉 비리혐의의 국회의원에 대한 공소권을 바로 검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공소권이 무엇입니까. 바로 국가권력입니다. 소위 공권력을 개인이 행사하는 유일한 직업인 셈입니다.

검사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바로 법 개정뿐입니다. 그 권력은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검찰의 권력분산을 핵심 내용으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지난 6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카운터펀치를 날린 것입니다. 검찰 분위기는 한마디로 사분오열 표현 그대로입니다. 간부급 검사들의 줄사표에 이어 검찰총장은 사퇴라는 강수로 맞서고 있습니다. 버스는 이미 떠났는데….

지난 6월 한 달 동안 이들 권력이 맞붙어 힘겨루기를 한 모양새는 너무도 볼썽 사나왔습니다. 이 와중에 검사와 국회의원이라는 고래싸움에 등이 터졌어야 할 새우는 오히려 고래만한 먹잇감을 챙겼습니다. 화장실에서 웃고 있는 경찰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이라는 두 집단의 갈등에 여론이 검사 측이 아니라 국회의원 쪽에 무게를 실어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았던,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독점했던 검찰조직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없었다는 반증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
영화나 드라마 어디에서도 이런 거만한 멘트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야 검찰이 바로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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