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돌이켜보아 부디 낯부끄러워함을 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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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돌이켜보아 부디 낯부끄러워함을 면하기 바란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2.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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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⑪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⑪

[한정주=역사평론가] 1741년(영조 17년)에 태어나 1826년(순조 26년)에 사망한 윤기라는 이는 자호(自號)를 무명자(無名子)라고 했다.

성호 이익의 제자였던 윤기는 노론과 외척 세력이 판치는 세상에서 쇠락한 남인 가문 출신으로 한평생 곤궁한 삶을 살았지만 깨어 있는 지식인(선비)의 ‘자의식’을 지켰던 사람이다.

86세를 살았던 그는 막 70세를 넘긴 때 ‘벙어리로 살 것을 맹세한다’는 뜻의 ‘서음(誓瘖)’이라는 자전적 기록을 남겼을 만큼 답답하고 암울하며 버림받은 삶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자존감과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관한 글을 썼던 독특한 문인이다.

특히 그는 “사람으로부터 문장을 말하면 사람은 또한 문장이고 문장은 또한 사람이며, 문장으로부터 사람을 말하면 사람은 스스로 사람이고 문장은 스스로 문장이다.”(김병건 지음, 『무명자 윤기 연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2. p209)라고 언급해 ‘글이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곧 글’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무명자(無名子)는 세간의 모든 일에 대해 온통 어두워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고 특별히 이룬 일도 없으니 대개 천하의 버려진 사람이다. 그리하여 억지로 말을 하고자 하면 그 말은 반드시 실행되지도 못하고 다만 일을 망치고 화합을 그르친다.

이러한 까닭에 묻는 말에 대답하거나 나에게 절실하여 발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면 맹세컨대 더 이상 한 마디로 내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바보와 귀머거리 같은 본 모습을 잃지 않게 되길 바란다.

또 간혹 손님과 인사를 주고받고 나서 곧바로 잠자코 있으면 거의 나를 거만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전혀 관계없는 잡담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골라내어 수작을 하리라. 그 밖에는 오직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보고, 먹을 것이나 입을 옷이 있으면 의식을 해결하고 없으면 굶주리고 추위에 떨 뿐이다. 그렇지만 이것이면 충분히 여생을 마칠 수 있을 터.

옛 사람 중에 청맹과니인 척한 자가 있었는데 계집종이 앞에서 음행을 저지르고 자식이 우물로 들어가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진실로 마음이 한 번 정해진다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옛날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대부였던 거백옥은 오십 년을 살고서 사십구 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고 한다. 지금 무명자는 칠십 년을 살고서 육십 구년 동안의 잘못을 알게 되었으니 비록 매우 부끄럽지만 그 또한 다행이다.” 윤기, 『무명자집(無名子集)』, ‘서음(誓瘖)’

이보다 이른 시기인 나이 63세 무렵 지은 ‘자찬(自贊)’이라는 글에서는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고 ‘춥고 배고픈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애초에 타고난 성품을 잃지 않은 자신’을 스스로 찬미했다.

“생김새는 못나고 말 품새는 썰렁하니 / 이 때문에 객이 오지 않는구나 / 뜰 밖을 나가지 않고 남을 속이며 폼 잡는 일 배우지 않았으니 / 이 때문에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도다 / 꾀를 내어 이룬 것 없이 형편 따라 먹고 입으니 / 이 때문에 춥고 배고픈 삶이로다 / 일찍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겨우 ‘색려이내임(色厲而內荏: 안색은 엄숙하지만 마음은 유약한 사람)’을 면했으니 / 그나마 애초에 타고난 성품 잃지 않았네.” 윤기, 『무명자집』, ‘자찬’

그리고 나이 78세가 되던 1818년(순조 18년)경 스스로 묘지명을 지으려다가 가난하고 궁색한 살림에 자식들이 장지(葬地)를 마련하지 못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자작뇌문(自作誄文)’을 써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무명자(無名子)는 나이가 아흔에 이르렀으니 요절이 아니며 / 관직이 붉은 비단옷을 입고 옥관자를 띠므로 작지 않았다 / 얼고 굶주려 구렁과 골짝에 뒹굴게 되는 걸 면했으므로 가난하지 않으며 / 태평시대에 나서 태평시대에 늙고 태평시대에 죽으니 일진이 나쁘지 않았다 / 그 사람됨은 겉으로는 부드러워도 안으로는 굳세되 오로지 임진(任眞: 천진에 내맡김)을 분수로 여겨 / 세상과 겨루는 바가 없고 남에게 구하는 바가 없었다 / 오로지 성인의 말씀 이것을 믿고, 오로지 일념의 잘못 이것을 미워했으며 / 이리저리 돌아보지 않고 홀로 행하여 시류에 뇌동하거나 더러운 이와 부합함을 부끄러워했다 / 삶과 죽음의 이치는 궁극에까지 알고 / 이 몸이 죽은 이후의 일은 묵묵히 헤아려 알기에 / 병들어도 상하의 신명에게 기도하지 않고 죽어도 친우들에게 만사와 뇌사를 구하지 않았다 / 유계(遺戒)는 무익한 공언을 짓지 말라는 것이며, 산지(무덤)는 망령스럽게 곧바로 옮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 이에 인간세상을 헌신 벗듯 벗어던지고 크고 넓은 우주의 근원으로 호탕하게 돌아갔으니 / 평생을 돌이켜보아 부디 낯부끄러워함을 면하기 바란다 / 다시 미련이 없으니 어찌 유쾌하고 즐겁지 아니하냐 / 그러나 차마 곧바로 영결하지 못하는 것은 천지의 큼, 해와 달의 빛, 산천의 밝고 수려함을 다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요 / 사당과 선영에 무릎 꿇고 절하는 예절을 다시는 펼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성인의 경(經)과 현인의 전(傳) 및 세간의 만 권 서적 가운데 평생 사랑하고 즐겨서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는 맛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니 / 이것이 섭섭할 따름이다.” 윤기, 『무명자집』, ‘자작뇌문(自作誄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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