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전쟁의 광기로 몰아넣은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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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전쟁의 광기로 몰아넣은 세 가지
  • 조선희 기자
  • 승인 2013.11.26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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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잘살게 된 20세기에 놀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격렬한 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세기를 지배한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이전의 그 어떤 전쟁에서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어떤 기준으로든 역사상 인간이 일으킨 최대의 재앙이다. 그런데 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제외하고도 20세기에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캄보디아의 독재자 폴 포트,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청년투르크당 정권, 1920~50년대 소련 정권, 1933~45년의 나치 정권의 인종 학살을 비롯해 멕시코혁명 전쟁, 러시아 내전, 중국 내전, 한국 전쟁, 에티오피아 내전, 나이지리아 내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모잠비크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 이라크 전쟁, 수단, 콩고, 르완다, 부룬디 등에서 계속되는 내전들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1900년 이후 100년은 유례없는 진보의 시기였다. 이전 세기에 비해 연평균 성장률이 열 배 이상 높아졌고 기술 발전과 지식의 향상으로 인간은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되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전염병을 퇴치하면서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1900년 이후 80년간 대도시 인구는 두 배가 넘게 증가했고 사람들은 더 효율적인 노동으로 이전보다 세 배가 넘는 시간을 여가 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민주주의와 복지의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잘살게 된 20세기에 놀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격렬한 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보가 대량 학살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 20세기에 인종상의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유전 법칙이 널리 보급되고 인종이 뒤섞인 이주 지역의 분쟁지가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인종 및 민족 갈등이 증폭되었다.
인종 및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제국의 쇠퇴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스쿨 교수인 니얼 퍼거슨은 20세기의 극단적인 폭력성의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즉 인종 및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그리고 제국의 쇠퇴다.

20세기에 인종상의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유전 법칙이 널리 보급되고 인종이 뒤섞인 이주 지역의 분쟁지가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인종 및 민족 갈등이 증폭되었다. 국내외 이주 집단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과, 동질적인 정치 조직의 수립이라는 이상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1940년대에 대량 학살이 자행된 지역들이 곧 여러 민족이 정착해 살고 있던 지역들과 일치한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갈등은 경제적 변동성과도 관련이 있다. 경제적 변동성이란 경제 성장률, 가격, 금리, 고용 변화의 빈도와 진폭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회적 압력과 긴장을 의미한다. 경제 변동은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데 대체로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거나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 소수 민족 집단들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

한편 20세기에는 그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다민족 거대 제국이 해체되면서 새로 등장한 소련, 독일, 일본 등의 제국 국가가 등장한 시기다. 이전의 제국들이 쇠퇴하면서 분쟁 지역이나 권력의 공백 지대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정권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이들 제국 국가는 과거의 제국들과 달리 중앙 집권적인 권력과 경제적 통제,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역시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20세기 세계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격변은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지배력이 쇠퇴한 현상이다.

서구 세계의 몰락
1900년 당시 서양은 정말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베링 해에 이르기까지 당시 동양으로 알려진 거의 모든 지역은 어떤 형태로든 서양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고 네덜란드는 동인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지배했다. 미국은 필리핀을 수중에 넣었고 러시아는 만주를 차치하려 애썼으며 제국주의 열강들은 중국을 갈라 먹기에 바빴다.

20세기 세계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서양’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미국의 세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격변은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지배력이 쇠퇴한 현상이다.

이는 1904년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로부터 시작하여 1978년 이후 중국의 경제 부흥에서 절정을 이룬다. 니얼 퍼거슨이 역사상 유례없는 진보의 시대인 20세기가 피로 물든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지적한 제국의 쇠퇴는 니얼 퍼거슨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이야기하는, 현재에도 진행 중인 ‘서양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20세기 말 냉전이 끝나자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며 ‘역사의 종언’이 선언되었지만 실제로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니얼 퍼거슨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것을 두고 “기본적으로 지난 100년의 궤적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다시 동양으로 방향을 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소득 격차는 좁혀지기 시작했고 서양의 상대적인 하락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이는 1500년 이후 4세기 동안 무너졌던 동서양의 균형이 회복되면서 세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 1차 세계 대전은 오래 전부터 예상해 온 위기가 아니라 충격이었다.
기존 역사관에 도전
그의 책 <증오의 세기>는 기존 역사관에 도전해 동시대인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한다. 역사가들은 1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의 기간을 고조되는 긴장과 위기의 시기로 묘사하려 한다.

그러나 니얼 퍼거슨은 “1914년에 일어난 사건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보다 이후 4년간 발생한 중요한 사건에 부합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확대되는 위기를 얼마나 적절히 서술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역사가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외교 위기에 대해 동시대인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사건의 전모를 이미 알고서 과거를 해석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의 역사가들에 의해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은 오래 전부터 예상해 온 위기가 아니라 충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세계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간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자신들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니얼 퍼거슨은 방대한 분량의 역사 및 통계 자료를 자유자재로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타자 혐오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정치 경제적 요인이 어떻게 결합되어 인간을 전쟁에 열중시키는지를 탁월하게 분석해 낸다.

그는 또한 20세기에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전쟁의 상황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지정학적 움직임과 사람들의 정서가 결합하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생생히 그려 냄으로써 기존의 역사관을 돌아보게 한다.

전쟁과 학살의 20세기가 남긴 교훈
H.G.웰스는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화성인들이 침략하여 지구를 초토화하는 ‘우주 전쟁’을 상상했다. 이후 100년 동안 인간은 외계인의 간섭 없이도 그에 필적할 만한 대대적인 파괴를 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자신의 동료 집단을 외계인으로 간주한 뒤 죽이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잔인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제 20세기의 가장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을 한데 묶는 공통 요인들을 분명히 짚어 내야 한다.

<우주 전쟁>은 공상 과학 소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세계 전쟁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아마도 웰스의 소설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1918년의 인플루엔자보다 더 지독한 변종과 전염병을 만들어 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의 개입으로 갑자기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 최악의 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세기의 전쟁을 야기했던 동인(動因)들을 이해할 때에만 다음 세기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 경제 위기의 와중에서 인종 갈등과 제국들 간의 경쟁을 불러내고, 그 과정에서 모든 인간이 공유한 인간애를 부정한 어두운 세력은 여전히 우리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만약 20세기의 역사가 지침이라면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같은 종교 및 같은 유전자는 아닐지라도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평화롭게 통합되어 있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이 연약한 문명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20세기의 역사는 경제적 불안정이 그러한 충돌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도 증명했다. 복지 국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동시에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빈부의 격차가 점차 커지는 오늘날 20세기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니얼 퍼거슨이 마지막 요소로 내세운 제국의 몰락은 그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주장해 온 서구 세계의 몰락과 이어지는데 쇠퇴하는 미국과 급부상하는 중국의 상황은 니얼 퍼거슨의 탁월한 안목을 증명하는 듯하다. 쇠퇴하는 제국과 새로 부상하는 제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충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전쟁의 불안과 위협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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