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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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온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3.14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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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⑭…자득(自得)의 미학③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⑭…자득(自得)의 미학③

[한정주=역사평론가] 견문이 넓고 세상 경험이 많다고 해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모두 자득(自得)할 수는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만약 아는 것이 좁다면 보고 듣는 것 또한 좁을 수밖에 없고, 반대로 아는 것이 많을수록 그에 비례하여 보고 들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득(自得)의 규모 또한 크고 넓어질 것이다.

따라서 견문은 반드시 지식과 결합되어야 한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지식이 되는 과정과 다시 지식이 보고 듣는 경험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온전한 앎’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식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넓게 보면 견문과 경험 또한 지식이자 동시에 지식을 얻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더 이해하기 쉽게 좁혀 말한다면 지식은 다름 아닌 책을 읽는 것, 즉 독서를 통해 가장 많이 얻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앞서 ‘법고와 온고의 미학’에서 소개한 것처럼 정약용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글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세상을 다스리는 경학(經學)을 읽어서 문장의 기초와 뿌리를 단단하게 세워야 하고”, “그런 다음에 역사 관련 서적들을 두루 공부하여 나라와 개인이 흥망성쇠하는 근원을 알아야 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실용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경제서(經濟書)를 즐겨 읽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문득 감흥이 일어나면 시를 지을 수 있고, 문장의 구상이 떠올라 비로소 생동감(生動感)이 넘치는 글이 써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정약용은 다른 어떤 문장가보다도 “문장이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장이란 무엇인가? 허공에 걸려 있어 쳐다볼 수 있고, 땅에 떨어져 있어 뛰어가 잡을 수 있는 것인가? 옛사람은 덕을 쌓으며 중용을 지켜 인격을 닦고 효도와 우애, 충성과 믿음으로 행동했다. 또 시서와 예악으로 기본 몸가짐을 기르고 『춘추(春秋)』와 『역경(易經)』으로 세상 모든 사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깨달았다. 즉 하늘과 땅의 올바른 이치와 모든 사물의 온갖 실정을 두루 꿰뚫었다.

그래서 대지가 모든 사물을 짊어지고 대해(大海)가 모든 물줄기를 담아내듯, 비구름이 가득하고 우레가 번쩍이듯, 마음속에 가득 쌓인 지식이 가만있지 못하고 터져 나오게 된다.

이렇게 된 뒤에 어떤 사물을 마주하여 공감을 일으키거나 그렇지 않은 것을 글로 써 밖으로 드러내면 거대한 바닷물이 소용돌이치고 눈부신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는 듯하다. 또한 이 글로 가깝게는 사람들이 감동하고, 멀게는 하늘과 땅이 움직이며 귀신이 탄복한다. 이것을 가리켜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문장이란 결코 밖에서 구할 수 없다. 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약용,『다산시문집』, ‘오학론 3(五學論三)’

글을 쓰려면 지식이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어야 한다는 정약용의 글쓰기 철학은 문장을 공부하고 싶다면서 온통 시문(詩文)에 관한 책만을 짊어주고 온 이인영이라는 후생(後生)에게 충고한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정약용은 ‘분주하게 서두르고 성급하게 내달린다고 문장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꾸짖으면서 먼저 “고전을 근본으로 삼고 여러 역사서와 제자백가들이 책으로 도움을 받아 온화하고, 인정이 두텁고, 깊고, 널리 통하는 기운을 쌓아 그윽하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뜻을 길러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내가 열수(洌水: 한강)가에 살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젊은이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등에 무엇인가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책 꾸러미였다. 내가 누구냐고 묻자 이름은 이인영이고 나이는 열아홉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뜻을 물었더니 문장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과거급제로 공적과 명성을 얻지 못하고 평생 동안 가난하게 살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했다.

책 꾸러미를 풀어 보니 모두 시인과 재능 있는 선비들이 지은 기이하고 뛰어난 작품들뿐이었다. 그 중에는 파리머리만큼 작은 글자로 쓴 글도 있고 모기 속눈썹처럼 세밀하게 엮은 글도 있었다.

이인영이 자신의 포부와 학식을 쏟아내는데 호로병에서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듯했다. 책 꾸러미 속의 작품들보다 수십 배나 더 풍요로웠다.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이마는 무소처럼 불쑥 튀어나와 밖으로 비치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리 와 앉아 보게. 내 자네에게 한 마디 하겠네. 문장이란 학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바깥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이네.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뱃속에 가득 차면 피부가 윤택해지고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얼굴에 붉은 빛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갑자기 문장을 이룰 수 있겠는가?

온화하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도와 우애로 본성을 닦아 공경과 성실을 한결같이 실천해야 하네. 이렇게 힘쓰고 올바른 길을 바라보면서 고전으로 마음을 닦고 지식을 넓히고 여러 역사서로 과거와 현재의 변화하는 이치를 꿰고 예악 문화와 법령 및 정치제도 그리고 옛 문헌과 법도 등을 가슴속 가득 쌓아야 하네.

그런 다음 외부의 사물과 마주쳐 옳고 그름, 이롭고 해로움을 다투게 되면 마음속에 가득 쌓아둔 경험과 지식이 파도를 치듯 거세게 소용돌이쳐 천하 만세의 웅장한 광경으로 세상에 남겨 놓고 싶어질 것이네. 그런 의지와 욕구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네. 그걸 지켜 본 사람들은 앞 다투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네.

나는 이러한 이치로 자신을 표현한 글만을 참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하네. 어찌 풀을 헤쳐 바람을 맞이하려는 듯 분주하게 서두르고 성급하게 내달린다고 문장을 붙잡고 삼킬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문장학(文章學)은 올바른 진리를 해치는 좀벌레라네. 내가 말한 문장의 이치와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네. 그러나 한발 물러서 문장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문과 길이 있고 기운과 혈맥이 있는 법이네. 그것은 고전을 근본으로 삼고 여러 역사서와 제자백가들의 책으로 도움을 받아 온화하고 인정이 두텁고 깊고 널리 통하는 기운을 쌓아 그윽하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뜻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네.

그래서 위로는 나라를 다스릴 대책을 생각하고, 아래로는 한 시대를 주름잡을 포부를 지녀야 하네. 이렇게 된 다음에야 그 뜻을 일러 하잘것없다고 하지 않을 수 있네.” 정약용, 『다산시문집』, ‘이인영을 위하여 주는 말(爲李仁榮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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