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넘어간 것이 아니라 국경이 우리를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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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넘어간 것이 아니라 국경이 우리를 넘어왔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8.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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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에서 주류로 부상하는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인들의 과거·현재·미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인을 가리켜 히스패닉(Hispanic)이라 부른다.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영어를 배우며 미국사회에 동화하기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히스패닉이란 단어는 미국 내 인종적·문화적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라티노(Latino)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게 된 이유다.

라티노는 라틴문화의 후손을 지칭하는 말로 앵글로색슨아메리카·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차이점을 부각시켜 미국 내 스페인어권 출신자들이 미국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생존권을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용어다.

현재 라티노는 미국 인구의 17%를 넘어서고 있다. 흑인보다 많은 숫자다.

애초 라티노는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주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다. 적은 수입과 낮은 교육 수준 등으로 인구 규모에 비해 미국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아 주변화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티노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2008년 대통령 선거 당시 라티노 캐스팅보트는 870만명으로 2004년 선거 때보다 210만명이 늘어났다.

오바마는 이들의 67% 지지를 얻은 반면 공화당의 존 매케인은 겨우 31%에 그쳤다.

오바마의 부상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라티노 사이에서의 압도적 승리로 유권자 지형을 완전히 바꾸었다.

실제 1994년에서 2009년 사이 의회의 라티노 숫자는 17명에서 25명으로 거의 50% 증가했다. 주 정부에서 선출직을 맡고 있는 히스패닉은 184명에서 247명으로 3분의 1이 증가했고 상원에서마저도 지난 10년 동안에 3석을 차지했다.

2050년경에 이르면 라티노의 수는 미국 인구의 1/3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더 이상 라티노는 미국사회의 주변적 존재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새뮤얼 헌팅턴은 라티노가 미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 라티노의 역사』(그린비)는 라티노가 미국사회에서 자리 잡게 되는 과정, 즉 라티노가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과 기원을 탐색하고 최근의 이민법 개정 움직임과 이에 반발한 라티노들의 대규모 군중 시위 등의 현재적 맥락을 정치사회적으로 고찰한다.

이 책의 원제는 ‘Harvest of Empire’(제국의 수확)이다. 즉 미국이 제국주의적 확장 정책을 펼치는 동안 원치 않은 수확물인 라티노 이주민의 기원과 역사, 현재와 미래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라티노 공동체의 역사를 다룬 통사의 성격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작가의 비판적 관점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뉴욕 데일리뉴스(Daily News)의 칼럼니스트인 후안 곤살레스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1.5세다. 그는 라티노 공동체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에 반론을 제기한다.

먼저 라티노 공동체 역사는 라티노 공동체 내부의 문제 혹은 미국의 개별적 역사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라티노 문제는 1980년대 이래의 대규모 이민에서 초래됐다고 본다. 그러나 곤살레스는 미국에 먼저 도달하고 공동체를 세운 사람들은 앵글로색슨이 아니라 스페인인들이며 19세기 미국·멕시코, 미국·스페인의 전쟁으로 많은 스페인어권 인구가 미국에 편입됐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들 초창기 라티노들은 ‘우리가 넘어간 것이 아니라 국경이 우리를 넘어왔다’고 말한다.

또 곤살레스는 라티노 공동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주장한다. 라티노 공동체를 하나로 간주하는 것 역시 결정적인 오류라는 지적이다.

사실 라티노 공동체는 인종, 출신 국가, 이민 시기 등에 따라 너무도 다양하다. 가령 쿠바 공동체 주류는 쿠바 혁명 직후 공산화 과정에서 미국으로 이주했고,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정착이 수월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경제적으로는 이미 미국 주류와 사실상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공동체는 백인과 흑인의 사이에서 인종적 정체성이 문제가 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앙아메리카 공동체는 소수이지만 출신 국가에서 신사회운동을 경험했고 이주 역사가 짧아서 가장 결속력이 강하다.

칠레나 아르헨티나 공동체는 상당수 지식인 망명자를 포함하고 있어 때로는 라티노 공동체의 오피니언 리더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라티노 공동체와 미국 주류의 갈등에 결부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중적 속성을 띠고 있다.

곤살레스가 라티노 공동체가 여럿임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미국·라틴아메리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벗어나고자 함이다. 생존권 문제는 라티노·미국 주류의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라티노 공동체가 다양성에 기초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라티노 공동체의 성장은 라틴아메리카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여한 멕시코계와 푸에르토리코계가 미국에 돌아와서도 전쟁영웅이 아니라 이방인 대접을 받았던 데서 정체성이나 차별적 사회구조에 대한 라티노들의 인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 냉전이 중앙아메리카, 칠레, 아르헨티나 공동체를 탄생시켰고 미국의 초국적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도미니카 공동체나 멕시코계의 제2의 이민물결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지적한다.

가령 냉전 시절에는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수많은 독재 정권이 라틴아메리카 각국에 들어섰는데, 이 여파로 많은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

이들은 라티노 공동체의 오피니언 리더가 되어 미국의 주류 담론에 대한 대항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다가 초국적 기업들이 미국이나 카리브 국가들로 생산거점을 옮겨 다니면서 라틴아메리카 이민 물결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 이민의 행렬을 늦추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누렸던 번영의 몫을 재분배할 것을 곤살레스는 제안한다. 이것은 단순한 인본주의적 차원의 배려가 아닌 미국이 세계 내에서 공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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