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하는 사람은 적이고, 비방하는 사람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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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하는 사람은 적이고, 비방하는 사람은 스승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5.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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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⑥
▲ 당태종(왼쪽)과 그가 살해한 황태자 이건성의 유력한 측근이었던 위징.

[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⑥

[한정주=역사평론가] 道吾善者(도오선자)는 是吾賊(시오적)이요 道吾惡者(도오악자)는 是吾師(시오사)니라.
(내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나의 적이고, 내게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나의 스승이다.)

역사적으로 제왕의 흥망(興亡)과 나라의 성쇠(盛衰) 이치를 따져보면 의외로 간단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간신(奸臣)을 가까이 하는 제왕은 망하고 나라는 쇠락하며 충신(忠臣)을 가까이 하는 제왕은 흥하고 나라는 융성하게 된다. 여기에서 간신은 당연히 제왕에게 좋은 점만을 들어 아첨과 아부하는 사람이고 충신은 제왕에게 나쁜 점을 지적하며 직언과 간언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아첨과 아부하는 간신은 제왕과 나라의 적이고, 직언과 간언하는 충신은 제왕과 나라의 스승이다.

적을 가까이하고 스승을 멀리하면서 흥한 제왕과 융성한 나라는 없었다. 반대로 적을 멀리하고 스승을 가까이하면서 망한 제왕과 쇠락한 나라 역시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한비자는 자신이 저술한 『한비자』 〈설의(說疑)〉편에서 하나라의 폭군 걸왕에게는 후치(侯侈), 은나라의 폭군 주왕에게는 숭후호(崇侯虎)라는 신하가 있어 제왕을 몰락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마침내 나라를 멸망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후치와 숭후호는 걸왕과 주왕의 곁에서 한결 같이 옳은 것을 잘못됐다고 하고 잘못된 것을 옳다고 말해 임금의 마음을 혼란에 빠뜨렸다. 또한 음흉한 마음을 감추고 겉으로는 사소한 일에도 근신하며 충성을 다하는 척하면서 만약 임금이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최선을 다해 맞춰주면서 환심을 샀다.

그들은 그렇게 아첨과 아부로 제왕을 미혹(迷惑)하여 사리판단을 못하도록 만든 다음 권력을 장악하고서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나라와 백성을 도탄(塗炭)에 빠뜨렸다.

그렇다면 제왕의 나쁜 점을 간언해 제왕을 흥하게 하고 나라를 융성하게 한 사람은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만약 필자에게 그런 사람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당나라 태종(太宗) 때 간관(諫官)으로 명성을 떨친 위징(魏徵)을 꼽겠다.

당태종은 애초 황제 계승권자가 아니었다. 그는 황태자였던 형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을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일종의 권력 찬탈자였다.

위징 역시 원래 당태종이 살해한 황태자 이건성의 유력한 측근이었다. 그러나 당태종은 위징의 인격과 인품에 끌려 간곡하게 출사를 청했고 위징은 비록 권력 찬탈자였지만 자신의 과오와 실책을 지적하는 신하들의 직언과 간언을 뿌리치지 않은 당태종의 자질을 보고 벼슬길에 나갔다.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직언과 간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위징과 자신의 과오와 실책을 지적하는 위징의 간언과 직언을 흔쾌히 받아들여 고치려고 했던 당태종의 일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 당나라의 역사가 오긍이 지은 『정관정요(貞觀政要)』이다.

이 책 가운데 위징이 당태종에게 올린 “유종의 미를 거두기 힘든 10가지 원인”은 위징이 한 수많은 직언과 간언 가운데에서도 백미(白眉)라고 할 만하다.

특히 위징은 대개 제왕들은 즉위 초기에는 정치를 잘하다가도 태평성세를 이루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해이해져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제왕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조목조목 따지고 밝혔다.

그럼 위징의 상소문을 읽은 당태종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태종은 위징의 간언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반성의 계기로 삼았다. 이때 위징의 간언에 대한 당태종의 답변은 이랬다.

“신하가 되어 군주를 섬기면서 군주의 뜻에 따르기는 매우 쉽지만 군주의 감정을 거슬리면서까지 간언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대는 나의 눈과 귀 그리고 손발이 되어 항상 사려 깊은 의견을 말한다. 나는 지금 그대에게서 잘못을 듣고 알게 되었으니 반드시 고쳐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노력할 것이다. 만약 이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슨 낯으로 그대를 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당태종은 위징에게 포상으로 황금 열 근과 마구간의 말 두 필을 특별히 하사했다고 한다. 더욱이 당태종은 위징이 죽고 난 후에도 항상 말하기를 “예전에 위징은 반드시 나의 잘못을 들춰서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이후에는 나의 잘못이 드러나는 일이 없다. 지난날에는 과오와 실책이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은 과오와 실책이 없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여러 벼슬아치들은 제각각 진심을 다하여 내가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을 곧바로 아뢰어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듯 위징의 직언과 간언 덕분에 당태종은 형제를 살해한 권력 찬탈자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중국사 최고의 태평성세라고 불리는 ‘정관(貞觀)의 치(治)’를 연 현군이자 명군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것은 당태종이 자신의 나쁜 점을 직언하고 간언하는 신하를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식견이 있는 독자라면 이와 같은 이치가 마땅히 제왕과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사 혹은 개인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에 쉽게 동의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순자 역시 자신의 저서인 『순자』 〈수신(修身)〉편에서 “非我而當者吾師也(비아이당자오사야) 諂諛我者吾賊也(첨유아자오적야)”라고 밝혔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나를 깨우쳐주는 스승”이지만 “나에게 아첨하고 아부하는 사람은 나를 해치는 도적”에 다름없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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