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는 것처럼 분노 다스리고, 물을 막는 것처럼 욕심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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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것처럼 분노 다스리고, 물을 막는 것처럼 욕심 막아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6.05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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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⑫
▲ 정명도와 정이천 형제의 스승으로 성리학의 기초를 닦고 기본 틀을 만든 대학자 주돈이.

[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⑫

[한정주=역사평론가] 近思錄云(근사록운) 懲忿如救火(징분여구화)하고 窒慾如防水(질욕여방수)하라.

(『근사록』에서 말하였다. “분노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마치 불을 끄는 것처럼 하고, 욕심을 막는 일을 마치 물을 막는 것처럼 하라.”)

『근사록』은 남송 시대에 창궐한 신유학(新儒學)인 성리학의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이 책은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朱熹: 주자)가 친구인 여조겸과 함께 성리학 사상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전 북송 시대 네 명의 학자. 즉 주돈이(周敦頥: 주염계)와 정호(程顥: 정명도)·정이(程頥: 정이천) 형제 그리고 장재(張載: 장횡거)의 문집 혹은 어록과 저서 등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을 가려 뽑아 편찬했다.

성리학의 정수를 집대성한 경전이라고 해서 이른바 ‘남송의 논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사록』이라는 책의 제목은 『논어』 <자장(子張)> 편에 나오는 자하의 말에서 그 뜻을 취했다. 자하는 “박학(博學: 널리 배움)과 독지(篤志: 뜻을 독실하게 함)와 절문(切問: 간절하게 물음)과 근사(近思: 가까이 생각함), 그 가운데에 인(仁)이 있다”고 했다.

자하가 말한 네 가지 가운데 근사(近思)에서 뜻을 취해 주희와 여조겸은 『근사록』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근사(近思)’란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가까운 것에서부터 생각하여 이치를 탐구하고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근사록』의 본문을 통해서도 이 책의 주인공인 네 명의 성리학자가 근사(近事)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정이천은 “어떻게 하는 것이 근사입니까?〔如何是近思〕”라는 어떤 사람의 물음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미루어 생각하는 것이다〔以類而推〕”라고 답변했다.

또한 “사람이 배우는 방법은 진실로 간절하게 묻고 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人爲學 切問近思者也〕”라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여기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한 『근사록』의 구절은 누가 한 말일까? 그는 바로 정명도와 정이천 형제의 스승으로 성리학의 기초를 닦고 기본 틀을 만든 대학자 주돈이이다.

일찍이 주돈이는 ‘역행(力行) 공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힘쓰고 정성을 다하며 한시도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분노한 마음을 다스리고 욕심을 막아서 잘못을 고치고 착한 곳으로 옮겨야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자 또한 일찍이 ‘구사(九思)’, 즉 ‘군자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 일’을 언급하면서 분노하는 마음을 다스릴 때 생각해야 할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 방법은 “분사난(忿思難)”이다. 다시 말해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분노하고 난 다음에 자신에게 돌아올 어려움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또한 주돈이는 욕심을 막기 위해서는 욕심을 적게 하는 과욕(寡慾)도 부족하다면서 아예 욕심이 없는 무욕(無慾)의 수준으로 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사록』에 기록되어 있는 주돈이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맹자는 ‘마음을 수양하는 데는 과욕(寡慾)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마음을 수양하는 데는 과욕(寡慾)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과욕(寡慾)에서 더 나아가 무욕(無慾)에 이르러야 한다. 욕심이 없는 상태에 이르면 정성(精誠)과 성실(誠實)이 바로 서고 밝음이 두루 통하게 된다. 정성과 성실이 바로 서면 현인(賢人)이 되고 밝음이 두루 통하면 성인(聖人)이 되는 법이다.”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분노하고 난 후 자신에게 돌아올 어려움을 생각하라는 공자의 말이나 욕심을 적게 하라는 맹자의 말은 실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생각되지 않은가. 반면 과욕도 부족하다면서 무욕에 이르러야 한다는 주돈이의 말은 매우 어려운 주문으로 다가온다.

보통 사람에게는 맹자가 말한 욕심을 적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아예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성현(聖賢)의 수준에 이른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돈이의 실천 방법은 공자나 맹자의 실천 방법보다 훨씬 더 강경하고 엄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유학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와 유학의 한 분파인 성리학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근사록』을 비교해 읽어보면 후자의 주장이 전자의 주장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강경하며 엄격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유학이라고 불린 성리학은 원래 공자와 맹자의 유학을 보수적인 입장에서 더 엄격하고 강경하게 재해석한 사상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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