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妄想)은 정신을 해치고 망동(妄動)은 재앙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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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妄想)은 정신을 해치고 망동(妄動)은 재앙을 부른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7.0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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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6강 안분(安分)…분수에 편안하라③
▲ ‘자기 분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을 흉내내거나 따라하려고 하다가는 본래 자신이 지닌 것마저 잃어버리고 마는 경우’를 가리키는 ‘한단지보(邯鄲之步’) 고사성어를 낳은 공손룡.

[명심보감 인문학] 제6강 안분(安分)…분수에 편안하라③

[한정주=역사평론가] 濫想(남상)은 徒傷神(도상신)이요 망동(妄動)은 反致禍(반치화)니라.

(분수에 넘치는 망령된 생각은 한낱 정신만 상하게 하고, 망령된 행동은 도리어 재앙만 불러온다.)

북송 때 학자 심괄(沈括)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서 “등주(登州)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바다 멀리 수평선 위로 누각들이 줄지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해서 해시(海市)라고 부른다”라고 했다.

심괄이 ‘해시’라고 한 것은 바로 ‘신기루’이다.

그 후 청나라 때 학자 적호(翟灝)는 『통속편(通俗篇)』에서 심괄의 기록을 언급하면서 “언행이 허황된 사람을 가리켜 공중누각(空中樓閣)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했다.

즉 분수에 넘치는 허황된 생각이나 현실성 없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일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을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현상에 불과한 신기루나 공중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 유익함도 없고 정신만 손상시킬 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율곡 이이는 20세 때 평생 동안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지은 <자경문(自警文)>에서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잡념’과 ‘헛된 망상’을 없애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율곡이 밝힌 ‘정심(定心)’ 공부의 요지는 이렇다.

“오랫동안 제멋대로 풀어놓은 마음을 하루아침에 거두어들이는 것, 그와 같은 힘을 얻기가 어찌 쉽겠는가. 마음이란 살아 있는 사물이다. 잡념과 헛된 망상을 없앨 힘을 완성하기 전에는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마치 마음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때 의식적으로 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더 어지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금방 일어났다가도 또 금방 사라졌다가 하여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듯한 것이 바로 마음이다. 설령 잡념을 끊어 없애더라도 다만 이 ‘끊어야겠다는 마음’은 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또한 망령스러운 잡념이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일어날 때는 마땅히 정신을 거두어 한곳으로 모아서 아무런 집착 없이 그것을 살펴야 한다. 결코 그러한 생각들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오래도록 공부하다 보면 마음이 반드시 고요하게 안정되는 때가 있게 된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편에 보면 자신의 학문과 변론이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한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학자 공손룡이 장자의 명성을 듣고 자신과 견주어 누가 더 뛰어난지 겨루려고 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손룡은 먼저 이웃한 나라인 위(魏)나라의 공자 위모(魏牟)를 찾아가 장자의 학문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위모는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본 개구리가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처럼 공손룡이 자신의 학문을 장자의 학문에 견주는 것은 마치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송곳을 땅에 꽂아 깊이를 재는 꼴이라면서 크게 비웃었다.

그러면서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에 온 어떤 젊은이가 그곳에서 유행하는 걸음걸이를 흉내 내다가 오히려 자신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때는 기어서 돌아갔다는 고사를 들려주며 공손룡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장자의 학문에 견주려다가 자칫 장자의 지혜를 알기는커녕 본래 자네가 지닌 지혜마저 잊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잃어버리고 말 것이네.”

『장자』에 나오는 공손룡과 위모의 고사는 ‘한단지보(邯鄲之步: 한단의 걸음걸이)’라는 고사성어를 낳았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을 흉내 내거나 따라하려고 하다가는 본래 자신이 지닌 것마저 잃어버리고 마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한단지보’이다.

이와 같은 이치가 공손룡의 경우에만 해당하겠는가? 역사 속에서는 재물과 권력과 명예 등에서 자기 분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을 흉내 내며 따라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단지보’의 고사는 망령된 행동은 재앙을 불러올 뿐이라는 여기 『명심보감』의 경고와 그 의미가 통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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