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상태바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7.06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6강 안분(安分)…분수에 편안하라⑦
 

[명심보감 인문학] 제6강 안분(安分)…분수에 편안하라⑦

[한정주=역사평론가] 子曰(자왈) 不在其位(부재기위)면 不謀其政(불모기정)하라.

(공자가 말하였다. “자신이 그 지위에 있지 않다면 거기에 따르는 정사에 대해 도모하지 않는다.”)

여기 공자의 말은 『논어』 <태백(泰伯)> 편과 <헌문(憲問)> 편에 중복되어 실려 있다.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는 공자 자신의 저술이 아니라 공자가 사망한 후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이나 제자들과 문답한 내용들을 모으고 엮어서 편찬한 책이다.

더욱이 『논어』는 한 가지 종류만 존재하지 않았다.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온 총 20편의 『노론(魯論)』과 이웃한 제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온 총 22편의 『제론(齊論)』 그리고 한나라 무제(武帝) 때 공자의 옛집을 헐다가 벽속에서 나온 『고론(古論)』 등 세 가지나 되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원본(原本)은 전한(前漢) 말기에 모두 분실되었다.

그럼 현재 전해지고 있는 『논어』는 무엇이란 말인가?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논어』는 전한 말기 장우(張禹)라는 학자가 『노론』과 『제론』을 모두 배워서 이 두 가지를 비교한 다음 20편으로 엮은 것이다.

『논어』의 전승을 둘러싼 이러한 우여곡절 때문인지 현재의 『논어』에는 제자의 말이 공자의 말로 둔갑해 있거나 혹은 공자의 말이 아닌 것이 공자의 말처럼 실려 있거나 혹은 여기 『명심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구절처럼 <태백> 편에 나오는 글이 <헌문> 편에 중복되어 등장하는 웃지못할 일이 종종 발견된다.

이러한 까닭에 어떤 학자들은 『논어』가 실제 공자의 언행록이라기보다는 공자의 제자나 후학들이 스승의 권위에 의탁할 목적에서 거짓으로 꾸민 위작(僞作)이자 위서(僞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不在其位(부재기위)면 不謀其政(불모기정)하라”, 곧 “자신이 그 지위에 있지 않다면 거기에 따르는 정사에 대해 도모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은 앞의 ‘신분과 지위에 따른 자기 분수를 지키고 살라’는 말과 그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천자는 천자대로, 제후는 제후대로, 대부는 대부대로, 선비는 선비대로 어떤 직책을 맡게 되면 거기에 걸맞은 정사만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기 시대의 ‘극심한 혼란과 분열’의 원인은 천자의 정사를 제후가 도모하고, 제후의 정사를 대부가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정사를 도모하라는 공자의 말은 단지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의 원리가 아니라 시대의 혼란과 분열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자 한 공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생각하는 것조차도 자신의 지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君子(군자)는 思不出其位(사불출기위)니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군자는 생각이 자신의 지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앞서 제5강 <정기(正己)> 편, 자허원군의 <성유심문>에서 말한 “不干己事莫妄爲(불간기사막망위)”, 곧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함부로 망령되게 하지 말라”는 주문과도 그 뜻이 유사하다고 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