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후회하게 되는 여섯 가지 일과 열 가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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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후회하게 되는 여섯 가지 일과 열 가지 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7.2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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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7강 存心篇(존심편)…마음을 보존하라⑬
▲ 북송 제3대 황제인 진종(眞宗:오른쪽)과 명재상 구준(寇準).

[명심보감 인문학] 제7강 存心篇(존심편)…마음을 보존하라⑬

[한정주=역사평론가] 寇萊公(구래공) 六悔銘云(육회명운) 官行私曲(관행사곡)이면 失時悔(실시회)요 富不儉用(부불검용)이면 貧時悔(빈시회)요 藝不少學(예불소학)이면 過時悔(과시회)요 見事不學(견사불학)이면 用時悔(용시회)요 醉後狂言(취후광언)이면 醒時悔(성시회)요 安不將息(안부장식)이면 病時悔(병시회)니라.

(구래공이 <육회명>에서 말하였다. “관리가 사사로운 마음에 부정을 저지르면 관직을 잃고 나서 후회한다. 부자가 검소하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후회한다. 재주는 어렸을 때 배우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한다. 일을 보고도 배우지 않으면 써먹어야 할 때 후회한다. 술에 취한 후 미치광이처럼 함부로 지껄이면 술이 깨고 나서 후회한다. 편안할 때 충분히 쉬지 않으면 병이 들었을 때 후회한다.”)

구래공은 북송 제3대 황제인 진종(眞宗: 재위 998~1022년) 때의 명재상으로 원래 이름은 구준(寇準)이다. 그가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구래공’으로 널리 불리게 된 까닭은 이렇다.

진종이 제위(帝位)에 오른 지 6년째 되는 1004년 거란족이 세운 북방의 요나라가 20만 대군을 일으켜 송나라(북송)를 공격해 왔다. 진종은 물론이고 조정 안팎의 모든 신하들이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구준은 황제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한다면 아무리 강대한 적군이라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간언했다.

이에 진종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나가 요나라와 맞서 싸우는 한편으로 해마다 은 10만냥과 비단 20만필을 준다는 조건으로 강화조약을 맺어 20만 대군을 물러나게 했다.

이후 구준은 충직한 간언으로 나라를 존망의 위기에서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구준은 ‘내국공’으로 불리게 되었다.

구준은 이전 제2대 황제인 태종(太宗) 때 벼슬살이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도 황제에게 자주 직언을 해서 태종이-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당 태종 때의 간관 위징에 비유해 칭찬하곤 했다고 한다.

여기 구래공의 <육회명>에는 이러한 구준의 강직한 기질과 청렴한 성품이 잘 나타나 있다.

동양 고전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기 구래공의 <육회명>과 더불어 남송 주희의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를 곧잘 비교해 가르치거나 배우곤 한다. 구래공이 ‘여섯 가지 후회할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면 주자는 이보다 많은 ‘열 가지 후회할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주자가 살아가면서 해서는 안 된다고 한 ‘열 가지 후회할 일’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이다. 부모에게 불효한다면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불친가족 소후회(不親家族 疎後悔)”이다. 가족에게 친절하게 하지 않으면 멀어진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소불근학 노후회(少不勤學 老後悔)”이다. 젊었을 때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은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안불사난 패후회(安不思難 敗後悔)”이다.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부불검용 빈후회(富不儉用 貧後悔)”이다. 부유할 때 절약해서 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춘불경종 추후회(春不耕種 秋後悔)”이다. 봄에 밭 갈고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온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불치원장 도후회(不治垣墻 盜後悔)”이다. 미리 담장을 고치지 않으면 도둑이 든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색불근신 병후회(色不謹愼 病後悔)”이다. 여색을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면 병이 든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홉 번째는 “취중망언 성후회(醉中妄言 醒後悔)”이다. 술에 취해 함부로 말을 하면 술이 깬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열 번째는 “부접빈객 거후회(不接賓客 去後悔)”이다. 손님을 잘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다음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구래공의 ‘여섯 가지 후회할 일’과 주희의 ‘열 가지 후회할 일’만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살아가면서 후회하게 될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을 실천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보통 사람에 불과한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후회할 혹은 뉘우칠 회(悔)’를 파자(破字)한 ‘매심(每心)’을 자신의 호로 삼은 형 정약전에게 ‘매심재기(每心齋記)’를 지어주면서 정약용이 적은 “작은 과오라면 조금 뉘우치고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큰 과오라면 고치더라도 매일같이 뉘우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는 말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진실로 후회하고 뉘우쳤다면 잘못은 더 이상 허물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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