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을 꾸짖은 원헌의 안빈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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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을 꾸짖은 원헌의 안빈낙도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7.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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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7강 存心篇(존심편)…마음을 보존하라⑮
▲ 작고 초라한 원헌의 집을 찾아간 자공.

[명심보감 인문학] 제7강 存心篇(존심편)…마음을 보존하라⑮

[한정주=역사평론가] 心安(심안)이면 茅屋穩(모옥온)이요 性定(성정)이면 菜羹香(채갱향)이니라.

(마음이 편안하면 띠 풀로 엮은 초가집도 아늑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로 끓인 국도 향기롭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 사람인 이한(李澣)이 ‘무지몽매한 어린 사람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한다’는 뜻을 새겨 지은 『몽구(蒙求)』라는 책이 있다. 오늘날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책이지만 옛적에는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과 함께 널리 배우고 읽혔던 아동 교육서였다.

이한이 당나라 때까지 전해져온 유학 경전, 제자백가서, 역사서는 물론 개인의 저서나 문집 혹은 설화집과 잡기 등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방대한 규모의 서적에서 가려 뽑아 책을 엮은 까닭에 『몽구』에는 아주 다종다양한 성격의 기록들이 나온다.

그 가운데 『장자』에 실려 있는 공자의 제자 원헌(原憲)과 자공(子貢)의 일화는 여기 『명심보감』의 가르침과 딱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원헌은 집이 가난해 겨우 발을 뻗을 정도밖에 안 되는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그의 집은 띠풀을 엮어 지붕을 얹었고, 잡초를 얼기설기 얽어 문을 짰고, 뽕나무 가지를 휘어 문을 여닫았을 정도로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 원헌은 이렇게 작고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항상 편안한 마음을 유지한 채 정좌를 하고 거문고를 타며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다. 비록 먹을 것이라곤 거친 밥과 나물 반찬밖에 없었지만 이 또한 크게 만족하며 살았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최고의 부자였다. 어느 날 자공은 아름답게 치장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훌륭하게 꾸민 옷을 입고 원헌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자공이 타고 온 마차가 좁다란 골목보다 더 컸던 까닭에 원헌의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에 자공은 마차에서 내린 다음 원헌의 집으로 걸어갔다. 자신을 찾아온 자공의 모습을 발견한 원헌은 너무나 기쁜 마음에 신발을 발에 걸친 채 질질 끌면서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마중 나갔다.

그런데 원헌을 본 자공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면서 “정말로 심하게 병들고 쇠약해졌군요”라고 말했다.

자공의 탄식을 들은 원헌은 순간 자공이 부귀영화에 푹 빠져 지내느라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선비의 삶을 단지 비참하고 누추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이렇게 말한다.

“아무런 재물도 없는 사람을 가리켜 가난하다고 말하고, 배우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병들었다고 말하네. 지금 나는 가난하지만 병든 사람은 아니네.”

원헌은 자공에게 ‘나는 가난하지만 병든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자네는 부귀하지만 병든 사람이다’며 힐책한 것이다. 일찍이 10대 제자를 언급하면서 공자가 언변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던 자공은 그 즉시 원헌의 말에 담긴 따끔한 훈계를 알아챘다.

그럼 자공은 자신을 크게 꾸짖은 원헌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공은 부귀와 권력을 모두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공자의 제자답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앞서 필자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안다고 한 말 기억하는가? 그렇다. 원헌의 말을 들은 자공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고 한다.

이후 자공이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고 무척 노력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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