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다스리려면 제방을 쌓고 성품을 다스리려면 예법으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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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다스리려면 제방을 쌓고 성품을 다스리려면 예법으로 하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8.0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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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①
▲ 인간의 성품이 선하다고 본 맹자(왼쪽)와 악하다고 본 순자.

[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①

[한정주=역사평론가] 景行錄云(경행록운) 人性如水(인성여수)하여 水一傾則不可復(수일경즉불가복)이요 性一縱則不可反(성일종즉불가반)이라 制水者(제수자)는 必以堤防(필이제방)하고 制性者(제성자)는 必以禮法(필이예법)이니라.

(『경행록』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다. 물은 한 번 엎질러지면 다시 담을 수가 없다. 성품도 한 번 방종해지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 물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제방을 쌓아야 하고 성품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법으로 해야 한다.”)

인간의 성품이 선하다고 본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악하다고 본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은 유가 내부의 최대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인간 본성은 선하다고 본 맹자와 같은 정통 유가들은 욕망과 이익을 좇는 행동이 외부의 사물로부터 자극받아 형성된 인간 본성을 흐트러뜨린 행동이므로 인간의 선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욕망과 이익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반면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본 순자는 욕망과 이익을 좇는 행동은 외부로부터 자극받아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맹자를 비롯한 유가들은 선한 성품에 따라 인간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인(仁)과 덕(德) 그리고 의(義)에 따라 세상은 다스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인간의 선한 본성을 외부로부터 자극하여 다치게 하는 욕망을 통제하여 억압하고, 그 선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교화 그리고 수행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여겼다.

반면 성선설에 대한 비판의 최고 논객인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선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선이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위적인 교육과 교화로서만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전국시대를 휩쓸고 있는 침략과 정복 전쟁, 사회적 쟁탈과 혼란은 피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에 전쟁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교육이라는 인위적 훈련과 예법(禮法)이라는 사회 제도에 따라 인간의 악한 본성을 교정·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자는 자신의 저서 『순자』 <성악(性惡)> 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惡)한 것이다. 선(善)이란 인위적(人爲的)으로 바로잡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이 때문에 서로 다투고 빼앗는 마음이 생겨나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 잔악하고 해치는 마음이 생겨나고 충성과 믿음이 없어지게 된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눈과 귀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어 음악이나 여색(女色)을 좋아한다. 이 때문에 음탕하고 혼란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예의와 문채(文彩) 그리고 도리가 없어지게 된다.

옛 성왕(聖王)들은 인간의 악한 본성으로 그 행동이 편벽되고 험악해져 올바르지 않고 세상이 어지러워져 다스려지지 않게 되자 예의(禮儀)를 일으켜 세우고 제도(制度)를 만들어 인간의 성정(性情)을 바로잡고 교화시켰다. 이에 비로소 인간 세상은 다스려지고 또한 도리와 이치에 맞게 되었다.”

특히 순자의 ‘성악설’은 제자백가 중 하나인 법가(法家)의 인간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순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예의의 교육과 실천, 예법이라는 사회제도를 통해 인위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순자의 제자이면서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예(禮)란 곧 법(法)’을 말한다‘면서 법치(法治), 즉 법에 따라 천하와 나라와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가나 법가와 함께 전국시대 최대 학파를 형성한 묵가(墨家)의 창시자 묵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교육과 습관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고 보았다.

묵자의 언행록인 『묵자』 <소염(所染)> 편에 보면 ‘묵비사염(墨悲絲染)’이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한다. 이 고사성어는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는 뜻인데 묵자가 파랑색을 물들이면 파랑색 실이 되고 노란색을 물들이면 노란색 실이 되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사람 역시 교육과 습관에 따라 그 성품이 좋게 되기도 하고 나쁘게 되기도 한다는 깨달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흰 실은 검게 염색되면 다시 흰 실이 되기 어렵듯이 사람 또한 한 번 악에 물들이면 다시 선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자나 순자나 묵자나 모두 교육과 교화든 혹은 예법이든 혹은 습관이든 결국 사람의 성품을 선한 방향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작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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