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형상을 보고 분노 경계하고, 연못의 형상을 보고 욕심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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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형상을 보고 분노 경계하고, 연못의 형상을 보고 욕심 막는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8.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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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④

[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④

[한정주=역사평론가] 愚濁生嗔怒(우탁생진노)는 皆因理不通(개인리불통)이라 休添心上火(휴첨심상화)하고 只作耳邊風(지작이변풍)하라 長短家家有(장단가가유)요 炎凉處處同(염량처처동)이라 是非無實相(시비무실상)하여 究竟摠成空(구경총성공)이니라.

(어리석고 어두운 사람이 성내고 화내는 것은 다 이치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화의 불길을 더하지 말고 단지 귓가에 스치는 바람일 뿐이라고 여겨라. 장점과 단점은 누구에게나 다 있고, 더운 것과 차가운 것은 어느 곳이나 다 같다. 옳고 그름은 본래 실상이 없어서 결국에는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다.)

『명심보감』의 엮은이는 어리석고 어두운 사람이 성내고 화내는 까닭을 첫째 장점과 단점을 따지기 때문이고, 둘째 더운 것과 차가운 것을 가리기 때문이고, 셋째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누구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성내고 화낼 까닭이 없고, 더운 것과 차가운 것은 다 같다고 생각한다면 성내고 화낼 까닭이 없고, 옳고 그름은 본래 실체가 없기 때문에 분별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성내고 화낼 까닭이 없다고 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가 잘했다느니 못했다느니 하는 마음, 무엇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마음, 무엇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마음, 즉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버린다면 성내고 화낼 까닭이 없다는 얘기이다.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에서 사람의 성품과 기질을 바로잡는 방법은 ‘극기(克己)’, 곧 ‘자기를 극복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극복해 성품과 기질을 바로잡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이 다름 아닌 ‘분노’와 ‘욕심’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율곡은 2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젊은 임금 선조에게 분노와 욕심을 바로 잡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주역』 <손괘(損卦)·상전(象傳)>을 인용했다.

“산 아래에 연못이 있는 형상은 손괘입니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분노를 경계하고 욕심을 막습니다.”

율곡은 이에 대한 주희의 해석, 즉 “산의 형상을 보고 분노를 경계하고, 연못의 형상을 보고 욕심을 막는다”는 구절을 언급하면서 기질과 성품을 바로잡을 때 ‘분노’와 ‘욕심’을 다스리는 일의 엄중함을 재차 강조했다.

그런데 도대체 산을 보고 분노를 경계하고 연못을 보고 욕심을 막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산의 형상을 보고 마치 산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분노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산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온힘과 온 마음을 다해도 산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분노를 경계할 때에는 산을 무너뜨릴 때처럼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해야 비로소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얘기이다.

연못의 형상을 보고 마치 깊은 구렁을 메우는 것처럼 욕심을 막아야 한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 이치이다. 깊은 구렁을 메우기 위해서는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해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욕심을 막을 때는 깊은 구렁을 메울 때처럼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해 욕심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욕심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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