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梅月堂) 김시습② 매화와 달을 사랑했던 광사(狂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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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梅月堂) 김시습② 매화와 달을 사랑했던 광사(狂士)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8.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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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⑬

 

▲ 심사정 <매월만정>

[한정주=역사평론가] ‘매화’와 ‘달’은 김시습의 삶과 사상 편력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초봄 찬바람과 추위 속에서 맑은 향기를 풍기며 홀로 꽃을 피우는 ‘매화’는 선비의 절개(節槪)를 상징하는 유가(儒家)의 기호(嗜好)이고, ‘달’은 깨달음 혹은 해탈(解脫)을 상징하는 불가(佛家:선가(禪家))의 기호이자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는 도가(道家)의 대도(大道)를 표상하는 기호이기도 하다.

앞서 율곡이 말했듯이 김시습은 유가와 불가와 도가에 모두 통달한 사람이었다. 또한 율곡은 김시습이 “마음은 유교에 있고 행적은 불교를 따라” 세상 사람들이 해괴하게 생각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매월당(梅月堂)’이라는 호에서 필자는 유가와 불가와 도가를 통섭(統攝)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행동에서 유가와 불가와 도가를 하나로 융합(融合)했던 김시습의 고고한 경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매화’에 대한 김시습의 남다른 사랑은 경주 금오산에 머물 때 적은 글을 엮은 『유금오록(遊金鰲錄)』에 실려 있는 ‘탐매(探梅)’라는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매화를 찾아서’라는 뜻의 이 시는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깨끗하고 맑은 향기와 꽃을 피우는 매화의 본성을 다양한 표현을 통해 찾아나가는 절묘한 작품이다.

모두 14수(首)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에서 김시습은 매화의 본성을 ‘정혼(貞魂)’, ‘정백(貞白)’, ‘정결(貞潔)’, ‘청영(淸影)’, ‘정신(精神)’, ‘진취(眞趣)’, ‘진미(眞味)’, ‘청진(淸眞)’, ‘고격(高格)’, ‘대절(大節)’, ‘정명(貞名)’ 등의 시어(詩語)로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다.

김시습의 ‘탐매(探梅:매화를 찾아서)’는 조선의 선비들이 ‘매화’를 소재로 지은 수많은 시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걸작이다.

“큰 가지와 작은 가지에 눈이 일천(一千)이나 쌓였는데 / 온난(溫暖)하면 차례대로 개화(開花)할 줄 응당 아네 / 옥(玉)과 같은 뼈 곧은 혼(魂)은 비록 말은 없지만 / 남쪽 가지는 봄의 뜻을 가장 먼저 움틔웠네.

위자(魏紫)와 요황(姚黃) 같은 모란은 모두 유명(有名)할 뿐더러 / 번성하고 화려함은 틀림없이 봄의 정(情)을 입었겠지만 / 어찌 매화의 마음이 곧고 깨끗함과 같겠는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높고 낮음 평가하지 않네.

일찍이 듣건대 곧고 깨끗하여 가장 다정(多情)하니 / 동풍(東風)에 피는 붉은 빛 보랏빛 꼴들과 다투지 않네 / 고산(孤山)을 한번 보고 마음 이내 허락하니 / 이로 말미암아 시명(時名)을 얻어 잘못 행해지게 되었네.

큰 가지는 둥그렇게 포개어 감아 굽고 작은 가지는 얽혔으니 / 한 줄기가 제비붓꽃(杜若) 물가에 가로 비껴있네 / 만약 맑은 그림자 보름달의 넋 아니라면 / 평생 묘사해도 분명코 얻지 못하리라.

색(色)인가 향(香)인가 성인도 알기 어렵지만 / 달 아래 정신(精神)은 문득 기이하네 / 자세하게 분별하여 명백한 곳에 왔지만 / 무정(無精)한 맑은 빛깔이 향기에 속고 마네.

눈 쌓인 길 그대 찾아 홀로 지팡이 짚고 가니 / 그 속에 참된 아취(雅趣) 깨닫는 듯 도로 아득한 듯 / 유심(有心)이 오히려 무심(無心)의 부림을 받아 / 곧바로 별빛에 도달하고 가로 비낀 달은 서쪽에 있네.

떠들썩한 묵(墨)의 풍류 수도 없이 그대 칭찬했지만 / 그대의 진미(眞味) 아직 탐문(探聞)하지 못했네 / 쓸쓸하고 고요한 노간(老幹)에 서너 송이 피었지만 / 문득 무리를 초월하여 눈을 사로잡네.

고산(孤山)의 두 구절은 정신(精神)을 얻어서 / 몇 마디 말에 가히 천고(千古)의 사람 놀라게 하네 / 언뜻 비치는 그림자와 그윽한 향기 비록 뼈를 얻어도 / 차가운 꽃술 홀로 청진(淸眞)한지 아직 모르겠네.

 

▲ 음영으로 처리된 김시습의 초상화

세상 사람들 담병(膽甁) 속에 꽂아 가꾸고 기르니 / 종이 바른 밝은 창에 뜻은 온 종일 같구나 / 자주 접해서 흔히 눈속임을 깨닫지 못하니 / 힘들게 눈 녹은 땅 찾아가면 어떠한가.
내가 일찍이 남송(南宋)의 시인 육방옹(陸放翁)의 광기(狂氣)를 닮아 / 삼십년 동안 물아(物我)를 잊고 지냈네 / 오늘 그대 보니 도리어 뜻이 있고 / 내일 아침 분명하게 신선이 마시는 술잔인 하상(霞觴)을 말하려네.

한 가지는 말라 수척하나 한 가지는 번성하니 / 애끓는 봄의 마음 어찌하여 일어나는가? / 비와 이슬 참으로 무정(無情)한 물건이니 / 말라 시들어도 참고 보지만 형통함을 받지 못했네.

절반이나 마르고 시든 잎 봄 가지에 붙었으니 / 곰곰이 생각하자 동풍(東風)이 불어옴을 깨닫지 못한 듯 / 자식 위해 오히려 먼저 꽃술을 붙였으니 / 잎이 없는 것을 막아 주어 사람의 눈을 속이네.

꽃이 필 때 높은 품격 꽃무리 중 빼어나고 / 매실(梅實)에서 신맛 낼 때 음식 맛이 향기롭네 / 꽃 지고 열매 맺어 끝날 때가 되어도 큰 절개 보존하니 / 수많은 다른 꽃 어찌 그 곁 엿볼 수나 있을까?

간절하게 바람 따라 말발굽을 쫓지 마라 / 돌아갈 때는 비록 좋지만 끌고 올 때는 아니네 / 한번 먼지와 진흙에 더럽혀진 뒤로부터는 / 부질없이 얻는 곧은 명성 세상사람 비방하네.”
『매월당집(梅月堂集)』, ‘매화를 찾아서(探梅)’

‘달’이란 존재는 불가(佛家)에서 깨달음 혹은 속세의 번뇌를 해탈한 피안(彼岸)을 상징한다. 또한 ‘달’은 어둠을 몰아내고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는 불광(佛光)이며 ‘달’이 떠서 질 때까지의 과정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성(佛性)을 깨달아 가는 과정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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