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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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은 좋지 않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11.14 0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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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㉖
▲ 5년 동안 제나라에 주둔하면서 70여개의 성을 항복시켜 연나라의 군현으로 만든 악의(왼쪽)와 첩자를 보내 연나라 혜왕과 악의를 비방하고 참소하는 말을 퍼뜨린 제나라의 전단.

[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㉖

[한정주=역사평론가] 是非終日有(시비종일유)라도 不聽自然無(불청자연무)니라 來說是非者(내설시비자)는 便是是非人(변시시비인)이니라.

(옳고 그름을 하루 종일 따진다고 해도 듣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다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바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출신의 명장(名將) 악의(樂毅)는 당대 최고의 병법가이자 군사 전략가로 큰 이름을 날렸다.

어질고 병법을 좋아했던 악의는 처음에는 조(趙)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다시 고향인 위(魏)나라로 옮겨 벼슬살이를 했다. 그러던 중에 위나라 왕의 사신으로 연(燕)나라에 갔다가 당시 천하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끌어 모으고 있던 연나라의 소왕의 눈에 띄어 단숨에 아경(亞卿)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연나라 소왕은 왕위에 오른 초기부터 일찍이 연나라를 침략해 유린한 적이 있던 제(齊)나라 민왕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나라는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강대국인 데다가 민왕의 세력 또한 강성해서 북쪽의 구석진 곳에 자리한 작은 연나라 소왕의 보잘 것 없는 힘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민왕이 자신의 강대한 힘만 믿고 교만해져서 폭정을 일삼아 민심을 잃고 이웃한 여러 나라들과의 사이까지 나빠지자 마침내 연나라 소왕은 제나라를 칠 결심을 하고 악의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이에 악의는 제나라는 강대국이어서 연나라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면서 조나라와 초나라와 위나라와 힘을 합쳐 제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연나라 소왕이 악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나라·초나라·위나라와 연합을 맺자 당시 제나라 민왕의 교만함과 난폭함에 질릴 대로 질려 있던 여러 나라들이 앞 다투어 반(反) 제나라 연합에 합류했다.

이때 악의는 조나라·초나라·한나라·위나라·연나라 등 다섯 나라 연합군의 병사를 통솔해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되어 제수(濟水) 서쪽에서 제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이 전투 이후 연나라를 제외한 나라의 군사들은 각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지만 악의는 연나라 군대를 이끌고 패퇴하는 제나라 군대를 뒤쫓아 수도 임치까지 쳐들어갔다. 그곳에서 악의는 제나라의 보물과 제물과 제기 등을 모두 빼앗아 연나라로 보냈다.

악의의 혁혁한 전공에 평생 마음에 맺힌 한을 푼 연나라 소왕은 너무나 기뻐했다. 그리고 악의를 창국(昌國)에 봉하고 창국군(昌國君)이라고 불렀다.

당시 연나라 소왕은 몸소 제수 기슭에까지 나와서 악의를 만나 격려했다. 연나라 소왕을 만난 다음 악의는 다시 군사를 이끌고 아직 항복하지 않은 제나라의 성들을 평정하러 나섰다.

이후 악의는 5년 동안 제나라에 주둔하면서 70여개의 성을 항복시켜 연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제나라 민왕이 지키고 있던 거(莒)와 즉묵(卽墨)만은 아직 항복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연나라 소왕이 죽고 혜왕(惠王)이 새로이 왕위에 올랐다. 혜왕이 즉위하자 악의와 연나라 왕의 사이를 이간질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제나라의 전단(田單)이 첩자를 보내 혜왕과 악의를 비방하고 참소하는 말을 퍼뜨렸다.

그런데 평소 악의의 전공을 시기하던 연나라의 신하들이 혜왕에게 악의가 딴 마음을 품고 있다면서 그의 행위에 대해 시비(是非)를 따져서 상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연나라의 신하들은 악의가 아직 항복하지 않은 거와 즉묵을 빨리 공격하지 않고 전쟁을 질질 끄는 까닭은 새로이 왕이 된 혜왕을 탐탁지 않게 여겨서이고, 이 때문에 악의는 연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제나라에서 왕이 되려 한다고 참소했다. 결국 혜왕은 기겁(騎劫)을 장군으로 삼아 제나라로 보내고 악의를 불러들였다.

악의는 연나라로 돌아가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에 서쪽으로 달아나 조나라에 몸을 의탁했다. 조나라는 악의를 관진(觀津)에 봉하고 망제군(望諸君)으로 부르며 극직하게 대우했다.

그런데 연나라 군대는 기겁이 지휘한 다음부터 제나라 전단에게 연전연패했다. 제나라는 악의에게 빼앗겼던 성을 모두 되찾고 마침내 수도 임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이르러서야 연나라 혜왕은 크게 후회하고 조나라에 있는 악의에게 사신을 보내 사과하는 말을 전하면서 다시 연나라로 돌아와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악의는 연나라 소왕에게 한 편의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은 일부 학자들이 삼국시대 촉나라 제갈량의 그 유명한 ‘출사표(出師表)’의 기초가 되었다고 보는 ‘보연왕서(報燕王書)’이다.

이 글에서 악의는 자신과 연나라 소왕 사이에 쌓은 군신(君臣) 간의 의리를 서술하면서 당장에라도 연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과거 자신의 행위를 둘러싸고 또 다시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드는 신하들이 있지나 않을까 크게 염려하는 마음을 전했다.

당시 악의가 혜왕에게 전한 글은 다음과 같다.

“지금 왕을 모시고 있는 신하들이 신(臣)을 참소하고 비방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가까이하여 또 다시 과거 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할까봐 염려될 뿐입니다.”

악의가 올린 글을 읽은 연나라 혜왕은 악의의 말을 받아들여 신하들에게 다시는 악의의 행위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하도록 명하고, 그 증표로 악의의 아들 악간(樂間)을 창국군에 봉했다. 이에 악의는 다시 연나라 혜왕과 화해를 하고 조나라와 연나라 사이를 오가면서 벼슬살이를 했다.

연나라와 조나라는 당대 최고의 명장이자 병법가요 군사 전략가였던 악의의 능력과 지혜를 높이 사 모두 객경(客卿)으로 삼아 극진하게 대접했다. 악의에 관한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악의열전>에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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