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소의 쥐와 창고의 쥐’…부귀·영화의 삶 선택한 이사(李斯)의 비참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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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의 쥐와 창고의 쥐’…부귀·영화의 삶 선택한 이사(李斯)의 비참한 최후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12.19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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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㊱

[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㊱

[한정주=역사평론가] 貧居鬧市無相識(빈거요시무상식)이요 富住深山有遠親(부주심산유원친)이니라.

(가난하면 시끌벅적한 저자거리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부유하면 깊은 산속에 살아도 먼 친척이 찾아온다.)

역사가들에게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도운 첫 번째 공신(功臣)은 누구일까라는 설문조사를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사(李斯)’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사마천이 지은 『사기』 <이사열전(李斯列傳)>을 읽어보면 이사는 지방 관청의 하급 관리였을 때부터 그 정치적 야심과 야망이 남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변소의 쥐’와 ‘창고의 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사는 ‘변소의 쥐’와 ‘창고의 쥐’를 통해 세상에서 잘났다고 대접받는 사람과 못났다고 멸시당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사람의 재주와 재능과 지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자리에 있고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초나라 상채(上蔡) 출신의 이사는 젊은 시절 지방 관청의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관청 변소의 쥐들이 작고 좁고 더러운 변소에서 더러운 것을 먹다가 더러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이라도 나면 두려워 벌벌 떨고 놀라 달아나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았다.

그런데 창고의 쥐들은 크고 넓고 먹을거리가 가득 쌓인 창고에서 입에 맞는 것을 멋대로 넉넉하게 먹으면서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다가가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여유롭게 사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사는 크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어리석고 궁색한 것과 현명하고 여유로운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변소의 쥐나 창고의 쥐와 같구나.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과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이구나.”

이사는 ‘변소의 쥐’와 ‘창고의 쥐’에 비교해 사람의 가난함과 궁색함 그리고 부유함과 여유로움의 차이는 그 사람의 처지와 환경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이때 이사가 깨우친 세상의 이치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이 가난하면 마치 변소의 쥐처럼 마음이 궁색해져서 평생 남의 눈치나 보며 비굴하게 살아야 하지만 부유한 사람은 마치 창고의 쥐처럼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로워서 자신이 뜻한 대로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는 즉시 아무런 미련 없이 지방 관청의 하급 관리를 내던지고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순자를 찾아가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의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이사가 제왕의 기술을 배우고 익힌 까닭은 오직 천하제일의 부귀와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제왕에게 유세(遊說)해 중용된 다음 창고의 쥐처럼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겠다는데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마친 이사는 자신의 고향인 초나라를 버리고 당시 가장 부유하고 강성한 나라였던 진(秦)나라의 제왕(훗날의 진시황)을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순자에게 작별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때 역시 이사는 자신의 뜻을 이렇게 밝혔다.

“사람으로서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은 지위가 낮은 것이고, 사람으로서 가장 슬퍼해야 할 일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이다. 오랜 세월 지위가 낮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부귀를 비난하고 이익과 영화를 미워하는 것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명심보감』의 구절대로 세상의 인심이란 가난하고 궁색한 사람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리하는 반면 부유하고 여유로운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까이하는 법이다.

이사는 이러한 이치를 ‘변소의 쥐’와 ‘창고의 쥐’의 모습을 보고 깨달은 다음 일찍부터 가난하고 궁색한 처지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제왕의 주변에서 부귀와 이익과 영화를 얻을 수 있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실제 진나라의 승상이 되어 천하통일의 일등 공신이 된 이사는 진시황을 제외한다면 천하에서 가장 부유하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마지막 모습 또한 가장 부유하고 여유로웠을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말년에 접어들어서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욕망과 부귀를 지키려는 욕심 때문에 진시황 사후 환관 조고의 흉계에 말려들어 가장 궁색한 처지에 내몰려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사마천은 <이사열전>에서 탁월한 문장력을 발휘해 이사의 성공과 몰락을 그 어떤 인물의 열전보다 드라마틱하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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