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라는 오역으로 인해 오해를 받아온 사상이다. 러시아 혁명가 등에 의해 급진적인 정치이념에 활용되면서 자유와 협동의 세계관에 기반한 사상의 본질이 퇴색해 버린 것이다.
러시아 귀족 출신의 혁명가로 급진적 아나키스트였던 미하일 바쿠닌에 따르면 자유란 국가를 비롯한 외부인이 부여하거나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이고, 그것에 대한 제약 또한 본래부터 인간에 내재돼 있으며, 그런 제약들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근본조건을 이룬다.
역시 러시아 혁명가로 아나키스트 운동의 이론가였던 피터 크로포트킨 또한 인간 세상을 넘어 자연과 만물을 생동,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경쟁이 아닌 협동을 설파했다.
다시 말하면 아나키즘이란 자연에 내재한 근본 법칙으로 인류사의 저변에 흐르는 거대한 힘이다.
예일대 석학 제임스 스콧 교수의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여름언덕)는 이러한 아나키즘의 힘이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움직이고 있는지, 아나키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인간사는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는지를 보여준다.국가와 자본의 냉혹한 욕망이 어떻게 세상을 획일적으로 구분하고 때로는 파괴하는지를 동남아의 전근대적인 부족의 생활양식과 농업생산을 연구해온 그의 독특한 이력을 통해 조명된다.
이 책은 새로운 정치이론이나 급진적인 주장을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개인적이면서도 관찰자의 시점에서 세상 변화의 추이와 질서의 이합집산을 자연스럽게 파헤친다.
또한 기존의 아나키즘과 달리 국가의 존재 이유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 새로운 평가와 쁘띠부르주아에 대한 해석이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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