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부는 명분과 절의를 무겁게 여기고 삶과 죽음은 가볍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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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부는 명분과 절의를 무겁게 여기고 삶과 죽음은 가볍게 여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3.0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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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⑦
▲ 맹자.

[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⑦

[한정주=역사평론가] 景行錄云(경행록운) 大丈夫(대장부)는 見善明(견선명)이라 故(고)로 重名節於泰山(중명절어태산)하고 用心精(용심정)이라 故(고)로 輕死生於鴻毛(경사생어홍모)니라.

(『경행록』에서 말하였다. “대장부는 선(善)을 명확하게 분별하기 때문에 명분과 절의를 태산보다 무겁게 여기고, 마음 씀이 깨끗하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여긴다.”)

유가 사상가 중 명분과 절의를 역설하고 삶과 죽음을 가볍게 여겼던 사람으로 치자면 맹자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학의 최고 덕목은 ‘인의(仁義)’이다. 공자와 맹자는 모두 ‘인의(仁義)’의 실천을 역설한다. 그런데 만약 ‘인의’에 대해 말할 때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두었는가를 살펴보면 공자와 맹자 간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공자가 ‘인(仁)’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면 맹자는 ‘의(義)’를 더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에 나오는 ‘인(仁)’과 ‘의(義)’의 횟수와 비중 그리고 맹자의 언행록인 『맹자』에 나오는 ‘인(仁)’과 ‘의(義)’의 횟수와 비중만 헤아려보아도 어렵지 않게 깨우칠 수 있다.

특별히 ‘명분’을 강조했던 맹자의 사상은 『맹자』 <진심 하(盡心下)> 편에 등장하는 “명분을 존중하는 사람은 의로움이 아니면 천승(千乘)의 나라도 사양한다”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면서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로 명분을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잘것없는 대소쿠리에 담은 밥과 변변치 않은 나무그릇에 담은 국조차 탐하는 기색이 얼굴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명분을 존중하는 사람은 명분에 맞지 않다면 천하의 재물을 다 가진 천승의 나라조차 사양하는 반면 명분을 존중하지 않은 사람은 하잘 것 없고 변변치 않은 음식에도 그 탐내는 마음 때문에 명분을 해치는 일을 다반사로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절의(節義)’를 역설했던 맹자의 사상은 『맹자』 <고자 상(告子上)> 편에 등장하는 “의로우면 삶과 죽음도 초월하고 고통과 재앙도 감수한다”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맹자는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生 : 삶)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의(義 : 의로움)도 역시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나는 기꺼이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할 것이다. 나는 삶을 원하지만 그보다도 의로움을 더 원하므로 구차하게 삶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죽음은 또한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보다도 나는 의로움을 잃는 것을 더 싫어한다. 그러므로 의로움을 잃게 되면 죽음을 맞는 환난을 당한다고 해도 나는 그 환난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의롭지 않는 방법으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나는 절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의롭지 않는 방법으로 죽음의 환난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이렇듯 삶과 죽음을 초개처럼 여기며 절개를 숭상하고 의로움을 추구했던 그 당당함과 강직함 때문에 맹자는 오늘날까지도 ‘절의지사(節義之士)’가 숭상하는 사표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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