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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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10.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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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생각하는 정치·학문·문학…『허균의 생각』
▲ 허균의 초상화

허균은 민본은 백성을 다스림의 대상으로 두고 그들을 위한 정치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애민(愛民)과 위민(爲民) 사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백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에 있어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라는 것이다.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은 이 같은 허균의 정치사상을 그대로 담았다. 서얼차별 철폐, 빈민구제, 탐관오리 응징 등 능동적 주체로서 사회개혁을 이끄는 백성의 참모습을 그린 것이다.

허균은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가장 낯선 인물이다. 허균에 대한 지식은 『홍길동전』과 누이 허난설헌 정도가 고작이다.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교육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만큼 허균은 위정자들에게 위험하고 불순한 사상의 소유자였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첫 책으로 출간 당시 독서계에 ‘허균’ 바람을 일으켰던 『허균의 생각』(교유서가)이 수정·보완을 거쳐 출간됐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 월간 『뿌리깊은나무』가 강제 폐간당한 후 같은 회사에서 출간됐던 이 책은 금서로까지 지정됐다.

이 책에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끝내 역모죄로 능지처참 당했던 허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사상을 담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의 시대상황과 집안내력을 살피고 정치, 학문(종교), 문학의 세 갈래로 허균의 삶을 재조명한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학자이자 문장가, 정치가였다. 부제학,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동인의 우두머리였고 청백리였다.

선조가 죽으면서 어린 영창대군을 부탁한다는 밀지를 내릴 적에 참여했던 맏형 허성 역시 뛰어난 문장가이자 성리학자였다.

서른여덟의 나이로 요절한 둘째 형 허봉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인의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이이에 의해 탄핵받고 유배를 당한 후 벼슬을 멀리하고 불교에 귀의했다.

해동에서 첫째가는 규수 시인으로 알려진 누이 난설헌은 김성립의 아내로 애환 많은 삶을 살다 수많은 시를 남기고 스물일곱 살에 요절했다.

허균은 다섯 살에 글을 배우기 시작해 아홉 살에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한다. 열두 살이 되던 해 누이와 함께 손곡 이달의 문하에서 시와 학문을 배웠다.

손곡은 일찍이 문장에 뛰어났으나 서류라는 이유로 벼슬길이 막혀 술과 방랑으로 세월을 보냈다. 훗날 허균이 서류들과 벗하고 편을 든 것도 스승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허균은 정치의 바탕을 민본에 두었다. 하늘은 인재를 내리면서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유재론’과 백성을 근본에 둔 ‘호민론’은 대표적인 글이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민중을 호민, 원민, 항민으로 나누어 각 부류의 정치성향을 분석했다.

항민은 무식하고 천하며 자기의 권리 및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나 지식이 없는 우둔한 민중을 말하며 원민은 부당한 사회에 대한 의문을 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소시민이나 나약한 지식인을 말한다. 반면 호민은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저항하고 도전하는 무리다.

 

허균의 호민은 그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에서도 잘 나타난다. 빈민을 구제하고 썩은 관료계급을 베어버리고 토호가 날뛰는 것을 막으며 민중을 착취하거나 억누르는 세력이 없는 이상국가인 율도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에서도 허균의 호민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서얼들을 대표해 개혁을 꾀하다 죽은 서양갑과 친분을 나누고 그를 후원하며 이론적인 뒷받침이 됐던 점에서도 허균의 급진적 정치성향을 알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추천사에서 “30여년 전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왔던 이이화 선생의 『허균의 생각』은 혁신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한 내 삶을 규정해준 책 가운데 하나”라며 “차별을 해소하고 민본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허균의 생각은 시대를 앞섰고, 위민과 애민사상의 표상이었다”고 말했다.

사대부의 자제로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도 당대의 권위에 과감히 도전했던 허균의 고발정신과 저항정신 그리고 개혁의지와 냉철한 현실인식은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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