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사람 부릴 때는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이 없게 해야 한다”
상태바
“아랫사람 부릴 때는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이 없게 해야 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9.06 0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15강 치가편(治家篇)…집안을 다스려라④

[한정주=역사평론가] 凡使奴僕(범사노복)에 先念飢寒(선념기한)하라.

(노복(奴僕)을 부릴 때에는 먼저 굶주림과 추위를 염려해야 한다.)

어질고 현명한 사람은 대개 어렸을 때부터 자기 아버지의 말과 행실을 따라 배우는 가운데 스스로 습성과 습관을 만든 사람이 많다.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정자 형제, 즉 정명도와 정이천을 소개할 때 유학, 특히 성리학사에서는 이들 형제를 공자와 맹자처럼 성현의 반열에 오른 이로 존숭하고 있다는 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주희와 그의 친구 여조겸이 모아 엮은 책, 즉 이들 형제의 언행록인 『근사록』을 읽어보면 정명도와 정이천의 덕성과 덕행은 어렸을 때부터 그 아버지의 말과 행실을 따라 배우는 가운데 스스로 이룬 습성과 습관이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정명도와 정이천의 아버지는 자(字)가 백온(伯溫)인 정향(程珦)이다. 정향은 전후 다섯 차례나 벼슬에 나아갔는데 형제나 친척의 자손들을 잘 가르치고 이끌어서 벼슬길에 오르도록 했다.

또한 형제나 친척의 자손 중 아버지가 없는 딸을 결혼시킬 때는 반드시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 나라에서 녹봉으로 받은 돈은 가난한 친척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정향은 자신의 집안을 다스릴 때는 법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엄하지 않았다. 특히 노비를 때리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나이 어린 노비들은 마치 자신의 아들과 딸처럼 여겼다. 간혹 자식들 중 노비에게 욕하거나 꾸짖는 모습을 보면 반드시 크게 나무라면서 이렇게 경계했다고 한다.

“비록 신분의 귀천(貴賤)은 다르다고 해도 사람은 다 한 가지다. 너희가 이 아이와 같을 때 마땅히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천한 노비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공손함과 겸손함과 온화함으로 대하라는 얘기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공손하게 대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손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덕(德)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겸손하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교만하다면 그 사람은 진정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비를 부릴 때는 먼저 굶주림과 추위를 염려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좀 더 비판적으로 본다면 굶주림과 추위를 염려하는 것은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이다. 따라서 굶주림과 추위를 염려하는 마음은 노비에게나 가축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노비를 진정으로 사람으로 대한다면 굶주림과 추위를 염려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신분의 귀천을 떠나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비 역시 같은 사람이므로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정향의 가르침은 정명도와 정이천의 인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