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함이 없으니 부족함도 없다”…현대인보다 풍요롭게 살았던 원시인들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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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함이 없으니 부족함도 없다”…현대인보다 풍요롭게 살았던 원시인들의 경제학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10.2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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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콰도르 정글에 사는 와오다니족 청년 밍카야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창끝(End of Spear)’의 한 장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인간의 욕망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잉여 가치설은 바로 이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아흔아홉 섬을 가진 지주가 100섬을 채우기 위해 남이 가진 한 섬을 빼앗는다는 속담처럼 잉여 물자를 쌓아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사실 풍요란 단어는 규정하기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 있고 오히려 덜 원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도 있다. 전자가 시장경제에서 이야기하는 풍요로움이라면 후자는 수렵채집경제에서 나타났던 풍요로움이다.

문명화된 관찰자들은 수렵채집민이 획득한 재화의 모든 것을 즉각 소비해버리는 것을 보고 낭비벽이라고 개탄했지만 희소성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는 수렵채집민들은 힘겨운 노동의 원죄에서 벗어나 더욱 일관되게 풍요로울 수 있었다. 원함이 없으니 부족함도 없었던 것이다.

수렵채집민은 경제적 가능성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수렵채집민은 그들의 주변에 널려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식량을 얻고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잉여나 여분은 귀찮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수렵채집민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빈곤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때문에 수렵채집민은 자유로웠다.

실제 멀지 않은 과거에 수렵채집민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웠다고 『석기시대 경제학』(한울)의 저자인 경제인류학자 마셜 살린스(시카고대 명예교수)는 말한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강조한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문명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이른바 미개사회를 마음대로 짓밟고 황폐화했다며 비난한 바 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 즉 수렵채집민들이 아직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을 때 그들의 삶은 풍요로웠다는 것이다.

마셜 살린스가 책에서 묘사하는 수렵채집민은 거의 일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시간은 길어야 하루 4~5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휴식과 수면으로 보낸다.

노동시간이 짧다고 빈곤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현대인 못지않게 다양한 식단으로 충분한 열량을 섭취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게 되는 수렵채집민의 음울한 삶은 문명사회, 그리고 시장경제와 접하고 난 뒤의 삶이다.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말미암아 오염된 왜곡된 시선을 통해 그들의 삶을 멋대로 오해하고 재단하고 있을 뿐이다.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인 마셜 살린스는 수렵채집 경제가 생계경제를 대표한다고 보는 경제학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즉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증명하고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려 한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인류학적 비판을 현재의 맥락으로 해석하면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하고 좀 더 인간 중심적인 경제 철학과 대안적인 세계관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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