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남동의 식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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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남동의 식탁은…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1.1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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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방영된 TV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단연 성진그룹 오너 일가의 식탁이다. 오너 일가만이 앉을 수 있는 그 식탁은 가족 전체가 모여 식사를 하며 몇 조 원의 투자를 결정하고, 수십억 원을 까먹은 이에게도 야단 한 마리로 용서를 하는 그런 자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식탁에는 단 한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가족 모두가 떠나고, 겉으로나마 단란했던 식탁에는 이서연(이요원 분) 혼자 앉아 외로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까지 식탁의 주인을 저울질하며 다른 식탁으로 떠났다.

드라마에서는 또 다른 식탁이 있었다. 장태주(고수 분) 가족의 행복한 밥상이었다. 투자를 결정하고 경영실패로 까먹을 돈도 없는 식탁이지만, 대신 그곳에는 가족 일상이 오가는 행복이 있었다.

황금의 노예가 되어버린 한 재벌가의 암투를 다룬 이 드라마를 새삼 떠올리는 이유는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 일가의 유산소송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그룹 계열사 등을 상대로 낸 주식인도청구소송이 그것이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양측의 공방에서 가족 간의 골육지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황금의 제국>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다른 형제들도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형과 동생이 벌이고 있는 유산소송의 본질에 대해 양측은 줄곧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월7일 열린 항소심 6차 변론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돈 문제가 아니고 삼성그룹 승계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라고 규정했다.

또 이맹희씨는 일주일 뒤에 열린 결심재판에서 “처음부터 재산을 노리고 한 소송이 아니다”고 밝혔다.

돈이 문제가 아닌 유산소송에서 이들 형제는 재판장이 줄곧 권유하고 있는 ‘원만한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맹희씨가 “건강악화와 장남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형사소송 등을 고려해 이번 소송을 화해로 풀기 원한다”며 화해조정을 제안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마저도 끝내 거부했다.

이 회장은 “정통성을 훼손하는 상황에서 화해 조정은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진지하게 연구하고 고민하고 생각한 결과 조정이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의 이 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형의 화해 조정을 받아들일 경우 차명주식의 불법전환을 일부 인정하는 모양새를 우려하고 있음을 읽게 된다. 즉 이 회장 측이 주장하고 있는 이번 사건의 본질인 승계의 정통성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주인공들의 암투는 돈에 앞서 성진그룹 오너 일가들이 앉는 식탁의 주인을 가리는 것이었다.

14일 열린 결심재판에서 이맹희씨는 삼성 일가가 함께 하는 식탁을 그리워했다. 그는 최후변론에서 “지금이라도 묶은 감정을 풀고 아버지 생전에 우애 깊던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성진그룹 오너 일가의 식탁이든, 아니면 장태주 가족의 밥상이든 그것은 별개다. 이미 이맹희씨는 식탁의 주인을 꿈꾸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것은 오직 이병철 창업주의 실질적인 장남은 아닐까.

문득 한남동의 식탁이 궁금해진다. 오늘 아침 이건희 회장의 한남동 식탁에는 누가 함께 앉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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