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세월 따라 내려앉은 청량산의 가을 실경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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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세월 따라 내려앉은 청량산의 가을 실경산수화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19.10.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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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① 퇴계,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겼다”고 극찬
이른아침 청량산 골짜기. 낮게 깔린 운무가 신비스럽다. [사진=이경구]

경상북도 봉화는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지점이다. 빼어난 풍광의 때 묻지 않은 청정 계곡과 올곧은 선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겼다”고 극찬한 퇴계가 아꼈던 청량산이 있다. 퇴계 선생은 스스로 ‘청량산인’이라 칭할 만큼 이 산을 아꼈고 청량산을 소재로 55편의 시를 남겼다.

청량산(淸凉山) 육육봉 (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백구(白鷗) /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漁舟子)알까 하노라. [<청량산가(淸凉山歌)>, 퇴계 이황]

즉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갈매기뿐 / 갈매기야 소문내었느냐 못 믿을 것은 복숭아꽃이로다 / 복숭아꽃아 떠나지 말라 어부가 알까 염려하노라’이다.

청량산은 청송 주왕산, 영암 월출산과 함께 ‘3대 기악산(奇嶽山)’의 하나. 태백산맥에서 뻗어나 낙동강 상류에 솟아오른 청량산은 산세는 크지 않으나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예부터 작은 금강산(소금강)으로 불렸다.

이른 아침 청량산 골짜기에 낮게 깔린 운무가 신비스럽다. 이 산에는 신라학자 최치원, 원효, 의상, 김생, 이황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장소와 설화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또한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 이곳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축조했던 산성 흔적과 원나라 황족이었던 노국공주가 남편 공민왕을 따라 피난왔던 애환이 서려 있다.

어둠이 깔려 고요한 새벽 3시에 길을 나섰다. 새벽 어스름이 걷히며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점점 또렷해진다. 먼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또 한 번의 가을이다.

청량산 12개의 암봉을 육육봉(6.6)이라 한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융봉을 말하는데, 그 모습이 연꽃 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에 꽃술처럼 청량사가 들어앉아 있다. 청량사는 이름 그대로 청량(淸凉)함과 고귀한 청정도량이다.

어풍대에서 본 청량사 전경. [사진=이경구]

오늘 산행코스는 입석-일주문-응진전-김생굴-경일봉-자소봉-탁필봉-연적봉-자란봉-하늘다리-선학봉-장인봉정상-뒷실고개-청량사-선학정-입석(원점회기) 이정표 기준 약 9km.

청량산 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2.8㎞를 더 올라가 입석에서 차를 세워두고는 된비알 산길로 접어들었다. 처음부터 시작된 오르막 계단의 압박이 간단치 않은 산행을 예고했다.

청명한 가을하늘 밑으로 파스텔톤 수채화가 투명하게 펼쳐졌다. 떡갈나무, 굴참나무, 굴피나무, 생강나무 숲이 하늘을 이고서 나그네를 맞는다. 가시옷 벗어던진 도토리도 반질한 맵시로 제 모습을 자랑한다.

청명한 가을하늘 밑으로 파스텔톤 수채화가 투명하게 펼쳐졌다. [사진=이경구]

차마 밟기조차 아까운 낙엽을 밟으며 지나자 소나무 가지사이로 응진전의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머무른 곳이며 뒤로는 가을이 익어가는 금탑봉의 아찔한 수직의 절벽이 산객으로 하여금 저절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바위가 층층이 탑을 이뤘다는 금탑봉과 응진전이 빚어낸 조화가 신비롭다.

절로 급해진 발걸음을 옮겨 응진전에 도착했다. 홍건적 침입 때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함께 이곳에서 피란을 와서 불공을 드린 곳으로 유명하다.

응진전. [사진=이경구]

응진전을 뒤로하고 산행을 이어간다. 금탑봉 사면의 좌측으론 천길 낭떠러지기이며 소나무들이 암벽에 뿌리를 둔 오묘한 경관을 보여준다. 능선 따라 흐르는 오색단풍은 5색 빛깔 음표가 되어 온산에 가을 선율이 되어 깔린다.

다리가 뻐근해지고 숨이 차오를 때 쯤 김생굴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통일신라시대 명필 김생이 수학했던 곳. 김생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10년 동안 서예를 연마했다고 한다.

바로 옆엔 최치원이 마셨다는 샘인 ‘총명수’가 등산객들의 목을 축여준다. 절벽 바위틈 사이에 있는 샘 총명수를 지나 어풍대에 도착한다. 산에서 대(臺)는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평탄한 곳. 청량산 연봉과 청량사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인다. 참 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김생굴에서 급경사를 오르면 경일봉(擎日峰)이 나온다. 이름대로 아침 해를 맞이하기에 좋은 조망을 가지고 있다.

길은 바위절벽의 틈새를 타고 기기묘묘하게 뚫려 있다 한 켠은 언제나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여기서 다시 능선을 따라 40분쯤 진행하면 자소봉이 나타난다. 청량산에서 가장 높은 자소봉(871.7m). 이곳은 청량산 최고의 조망 터다. 이름값이 어디 가겠는가. 철계단을 오르고 급경사 길을 두세 바퀴를 돌고나서야 겨우 표지석을 허락한다. 봉화의 산세는 물론 영양군의 일월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병풍처럼 둘러싼 비경에 눈과 가슴이 후련해진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뾰족하게 붓처럼 솟아있는 탁필봉·연적봉을 거쳐 하늘다리로 향한다.

하늘다리는 청량산의 명물이다. 자란봉(806m)과 선학봉(826m)을 연결한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설치한 산악 현수교로 다리 중앙의 바닥 일부분을 투명하게 해서 아찔함을 배로 준다. 멀리 낙동강이 청량산을 휘감아 흐르는 풍경은 한 폭의 실경산수화다.

자란봉(806m)과 선학봉(826m)을 연결해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산악 현수교인 하늘다리. [사진=이경구]

하늘다리에서 400여m 오니 장인봉과 딱 중간 지점이다. 장인봉에 오르려면 비탈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장인봉 표지석에서 김생의 필체와 만날 수 있다. 정상석의 장인봉(丈人峰)이란 글씨는 김생서집자(金生書集字)다. 김생이 직접 쓴 문헌이나 비첩(碑帖) 등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서 모아놓은 것이다.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장인봉 표지석. [사진=이경구]

장인봉 바로 앞 아찔한 절벽 끝에 전망대가 있다. 가파른 벼랑 너머로 명호면 쪽 풍경이 정겹다. 투구봉을 휘감은 낙동강도 가을햇살에 은비늘을 털며 안동호로 흘러간다. 봉화 뜰을 렌즈에 담고 나서 청량사로 내려선다.

청량사는 이름처럼 정갈하며 맑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지만 나이를 앞세워 역사를 읽도록 하는 위엄보다 다정함이 먼저 온다. 청량사 법당의 유리보전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진다. 이곳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지불(紙佛)로 지금은 금칠로 단장돼 있다.

청량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퇴계 이황의 자취가 남아 있는 ‘청량정사’와 ‘산꾼의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청량정사에서 퇴계는 어린 시절 숙부인 송재 이우로부터 글을 배웠으며 벼슬을 마치고 낙향한 뒤에는 후학들을 가르쳤다.

산꾼의집에서는 청량산에서 나는 9가지 약초를 넣어 끓인 구정차를 비롯해 각종 약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관창리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무인으로 운영되며 화상적인 뷰가 펼쳐진다. 1인 5000원, 차와 간식은 방문자 스스로 준비한다. [사진=이경구]

경사는 점점 더 가팔라지며 좁은 골짜기 사이로 난 계단 길이 이어지며 날머리 입석에 이르러 산행을 마친다.

10월도 저물어 갈 무렵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계절은 깊을 대로 깊었다. 사각사각 낙엽 갈리는 소리가 발밑에 내려 깔린다.

오늘 산행은 산길을 걷는 내내 천년 세월을 거슬러 그때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면서 마음까지 정화되고 산정을 거쳐 내려오고도 하루가 평온하고 여유롭다. 흐드러진 가을, 그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 아득한 푸른 하늘, 청랑산은 가슴에 오랫동안 스며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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