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묵은 때 씻겨내는 백두대산의 등뼈 오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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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묵은 때 씻겨내는 백두대산의 등뼈 오대산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19.11.0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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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②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오대산은 강원도 평창군·홍천군·강릉시에 걸쳐 있다. 산봉우리 32개, 계곡 31개, 폭포 12개를 거느린 큰 산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빠져나와 월정사로 향한다. 산세 깊고 맑은 오대산은 무한정 산소를 쏟아낸다. 코끝에 와 닿는 공기가 청량하다.

평창군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동쪽을 영동, 서쪽을 영서라 부르며 강원도를 일컫는 관동이라는 지명도 대관령에서 유래됐다. 평창은 산등성이에 산안개가 걸려있고 가랑비가 약하게 내린다.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는 오래된 1700그루 전나무들이 빼곡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숲에서 나온 향기로운 식물성 살균물질 피톤치드를 흠뻑 마셔본다. 전나무 숲엔 불이 붙었고 울긋불긋 단풍잎들은 알맞게 익어간다. 길가엔 벌개미취 군락이 함초롬이 젖어 있다. 아래쪽 계곡 물웅덩이엔 나뭇잎 배들이 빙빙 떠돌다 물길 따라 내려간다.

길과 숲은 시간에 따라 색감이 변한다. 아침부터 내린 이슬비에 억새풀도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바람의 손길에 몸을 맡긴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이루기도 하고 하얀 무채색이 되기도 한다. 만추의 가을비 속에서 인공 색소 전혀 없는 애기단풍이 빗방울보다 먼저 내려와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이 유난히도 선명하고 예쁘다.

산이 주는 넉넉함과 자연애의 동화를 느끼며 지루할 틈이 없이 발걸음을 잡아끈다. 천년의 숲이 내어준 신비스런 길이다. 옅은 구름과 가을비에 차마 밟기에 아까운 노란 단풍잎을 떨구고 있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정사를 지킨 숲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탑이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팔각구층 석탑(국보48호)과 그 탑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공양을 드리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창건으로부터 1400년이 흐른 월정사는 신라 최고의 가문 출신으로 출가 전 재상으로 부름을 받기도 했던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후 오대산에 터를 잡고 지은 절집이다.

6·25 때 불에 타 다시 지었지만 일주문 범종각·대웅전·팔각구층석탑(국보 48호)·보물 석조보살좌상과 함께 조선왕조신록을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가 있었고 많은 문화 예술의 생명이 숨 쉬고 있다. 절집에 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차수(두 손을 모음) 합장(부처님께 인사)을 한다.

평창하면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식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오대산과 대관령을 보며 즐기는 강원도 음식 모두가 진미다. 대관령 황태구이, 오대산 산채백반, 봉평 막국수, 운두령 무지개 송어 등이 대표적이다.

차가운 계곡에서 사는 찰지고 탱탱한 운두령 송어횟집으로 향한다. 송어(松魚)는 살결이 송판 무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어의 붉은 속살은 꽃처럼 아름답다. 송어는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으로 항산화 항암효과에 탁월한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회로 먹어도 담백 쫄깃하다. 특별하게 즐기는 방법은 큰 대접에 채소를 적당하게 넣고 송어회를 올린 다음 초장과 콩가루를 넣어 콩가루 채소 비빔을 하면 재료 본연의 자연 그대로의 맛이고 즐거움 속으로 데려간다.

베네딕틴 수도사 돈 페리뇽은 입안을 톡 쏘는 그 맛에 반해 “별을 마시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삼팡 모엣 상동! 샤르도네의 섬세함과 우아함을 느낀다.

모엣샹동과 송어회는 스파클링 맛이 조금 강했지만 참 좋았다. 한잔 술은 몸과 마음에 약이 될 듯하다.

첩첩산중의 해발 1000미터 넘는 드넓은 초원에 대관령 하늘목장이 있다. 여의도의 3배, 축구장 1200개에 달하는 방대한 초지다. 목장이 워낙 커 트랙터 마차를 타고 올라간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마음을 설레게 하며 길을 밝힌다. 목장 곳곳에 고산 습지식물과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나 계절의 정취를 더한다. 수 십개의 풍력 발전기도 이국적인 풍경이다. 백두대간의 중추 산맥이 만들어낸 절경이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은 뜯는 사방이 탁 트인 능선에 아무렇게나 앉아 대관령의 바람을 느끼는 행복을 무엇에 비할까

제법 걸었지만 정신이 말짱하고 개운하다. 영혼에 끼어있던 묵은 때가 말끔하게 씻겨나간 기분이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솔바람으로 허파를 한껏 부풀려 본다.

날숨과 들숨의 깊이를 가늠할 무렵 강원도 산골 맑은 숲속에서 목안으로 부드럽게 흘러 들어갈 커피 한잔이 간절해진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사람일까? 커피가 가슴속에 녹아들어 마음도 부르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말끔히 비운다.

또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다. 어느새 커피향처럼 저녁놀이 번진다. 물소리에 길을 묻고 해 너머 지는 꽃에 때를 물어 처음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나옹선사가 남긴 시를 읊조려 보면서….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네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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