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는 것이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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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는 것이 없는 사람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11.15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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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9강 교우편(交友篇)…친구를 잘 사귀어라②

[한정주=역사평론가] 家語云(가어운) 與好學人同行(여호학인동행)이면 如霧露中行(여무로중행)하여 雖不濕衣(수불습의)라도 時時有潤(시시유윤)하고 與無識人同行(여무식인동행)이면 如厠中座(여측중좌)하여 雖不汚衣(수불오의)라도 時時聞臭(시시문취)니라.

(『공자가어』에서 말하였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이 젖지는 않지만 서서히 옷이 젖어든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변소 안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러워지지 않지만 서서히 더러운 냄새가 배어든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앞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 번 공자의 예를 들어 보자. 왜냐하면 공자만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또한 부지런히 배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를 통해 보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배우는 것’이란 바로 ‘불치하문(不恥下問)’과 ‘학여불급(學如不及)’이다. 전자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나이와 신분과 직위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라도 물어서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면 후자는 배우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배운다면 그 배운 것에 미치지 못할까 혹은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불치하문’과 ‘학여불급’을 실천하려면 다시 공자가 말한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의 정신과 자세를 갖춰야 한다. 바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만약 이와 같이 배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이렇듯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신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반대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다시 말해 첫째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는 사람, 둘째 배우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 셋째 자신이 아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 넷째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아는 척하는 사람, 다섯째 배운 것을 소홀히 여기고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 사람, 여섯째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여겨 배우는 것에 교만하거나 방자한 사람 등을 가리켜 바로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여섯 가지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경우는 아마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아는 척하는 사람’과 ‘모든 것을 안다고 여겨 배우는 것에 교만하거나 방자한 사람’이 아닐까.

만약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겸손하거나 공손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고 방자하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인간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부류라고 할 것이다.

사람이 풍기는 냄새 가운데 가장 악취가 나는 것은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오만하거나 또는 건방지거나 또는 교만하거나 또는 방자한 사람이 풍기는 냄새가 아닐까.

이러한 사람과 함께 어울리다보면 비록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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