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상태바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12.06 0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19강 교우편(交友篇)…친구를 잘 사귀어라⑦

[한정주=역사평론가] 君子之交(군자지교)는 淡如水(담여수)하고 小人之交(소인지교)는 甘若醴(감약례)니라.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가 마치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마치 단술과 같다.)

‘군자의 사귐’과 ‘소인의 사귐’의 차이를 표현하고 있는 이 구절은 『장자』 <산목(山木)> 편 중에 나오는 자상호(子桑雽)의 말이다. 자상호는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장자가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이다.

『장자』 속에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삶을 추구하는 현자(賢者)로 묘사되고 있는 자상호는 공자를 가르칠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다.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이 구절이 등장하는 『장자』 <산목> 편의 내용 역시 공자가 묻고 자상호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공자가 자상호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저는 두 번이나 노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송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어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위나라에서는 저의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에서는 궁지에 빠졌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에 걸쳐 환란을 겪으면서 친하게 사귀던 사람들은 갈수록 멀어져갔고, 제자들과 친구들 역시 점차 뿔뿔이 흩어져버렸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공자의 질문에 자상호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선생은 은나라에서 도망친 임회(林回)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그 사람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벽옥(碧玉)을 버리고 어린아이를 업고 도망쳤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임회에게 물었습니다. ‘값어치로 따진다면 어린아이는 고작 몇 푼에 불과하고 힘들기로 따진다면 어린아이가 훨씬 더 힘들 텐데, 어찌하여 천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벽옥을 내팽개치고 어린아이를 업고 도망친 것입니까?’

이 말을 듣고 난 임회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벽옥은 이익(利益)으로 맺어진 관계이지만 어린아이는 천륜(天倫)으로 맺어준 관계입니다. 대개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는 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나 재앙을 겪거나 혹은 자신에게 해롭다고 여기면 서로를 버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천륜이 맺어준 관계는 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나 재앙을 겪거나 혹은 자신에게 해롭다고 해도 서로를 챙겨주며 보살펴주게 마련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를 챙겨주며 보살펴주는 것과 서로를 버리는 것은 그 차이가 아주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가 마치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마치 단술과 같습니다. 군자는 담백하지만 그 사귐이 친밀하고, 소인은 달콤하지만 그 사귐이 끊어집니다. 대개 아무런 이유 없이 만나 사귀는 관계는 또한 아무런 이유 없이 헤어지게 마련입니다.”

자상호의 말은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는 결국 이익 때문에 가까워진 만큼 또한 이익 때문에 멀어지게 되는 반면 천륜과 인륜의 도리에 따라 맺어진 관계는 의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익이 있어도 가까이하고 또한 이익이 없으면 더욱 챙겨주고 돌봐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천륜이 맺어준 관계가 부모 자식 사이라면 인륜이 맺어준 관계는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군자는 아무런 욕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기 때문에 그 사귐이 참으로 싱겁고 심심한 것 같지만 친밀함은 무엇보다 두텁고 오래가는 반면 소인은 이익을 탐하는 욕심으로 친구를 사귀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아부와 아첨 혹은 감언이설(甘言利說)을 늘어놓아 그 사귐이 참으로 달콤한 것 같지만 이익을 없을 경우 배반과 배신을 능사로 하여 오래가지 않아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예기』 <표기(表記)> 편에서는 “군자의 사귐은 마치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마치 단술과 같다. 군자는 담백한 사귐으로 마침내 그 사귐을 이루고 소인은 달콤한 사귐으로 마침내 그 사귐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장자』나 『예기』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진정한 사귐’이란 아무런 욕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친구를 사귈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