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한계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자각과 성장…『천년의 화가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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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한계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자각과 성장…『천년의 화가 김홍도』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9.12.12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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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단순히 그가 살았던 개인적인 삶을 살펴보는 작업으로 국한될 수 없다. 삶을 관통하는 행동의 흐름과 그 속에 내재된 의식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주변인들과의 동떨어진 삶을 상상할 수 없으며 시대적 상황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전기가 소개됐지만 대부분 연대기의 한계를 벗어나질 못했다. 그가 살았던 삶의 모습과 정신세계가 녹여져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묘사되지 못한 것이다.

단원 김홍도의 일생을 기록한 신간 『천년의 화가 김홍도』(메디치)는 그런 점에서 여느 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김홍도에 대한 기록은 가난한 바닷가 마을 소년이 임금을 그리는 어용화사가 되고 조선의 새로운 경지라는 찬사를 듣는 화원으로 성장하고 생의 마지막조차 기록되지 않을 만큼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등 중인 출신 화가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대부분 흩어지거나 빛바랜 기억 속에 혹은 논쟁과 추정이라는 베일 뒤에 가려져 있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은 도화서 화원’이라는 수식어로 김홍도의 삶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결코 예외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김홍도를 그려냄으로써 그의 삶과 정신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흩어진 기억을 그러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양반과 중인의 문집, 시대상을 그린 소설, 김홍도와 조선 후기 사회를 설명하는 최신의 연구 자료를 교차 대조해 그동안 논쟁과 추정에만 기대어온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김홍도의 아호인 ‘단원’, ‘단구’, ‘서호’의 연원을 추적해 그의 출생지를 안산 성포리로 비정하고 자신의 집을 그린 ‘단원도’의 배경이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인왕산 옆 백운동천 계곡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또한 중인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타고난 재능으로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자각과 성장을 이야기한다.

즉 도화서 화원으로 궁중화나 신선화를 그리던 그가 풍속화를 그리고 자연을, 마침내 마음을 그리게 되는 과정은 그의 삶을 스쳐지나간 번민이나 사색과 무관하지 않다. 산을 보면 산을 그리고 싶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그리고 싶어 천장에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중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내면에 천착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왕조 400년의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다고 평가받기까지, 그의 삶은 화가로서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이었다고 강조한다.

양반이 찾는 그림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고, 그 세상 안에 소외되고 핍박받는 이들을 끌어안았던 화가, 신분이 아니라 사람을, 풍경이 아니라 마음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화가 김홍도의 삶을 이끌었던 예술혼이 책 구석구석 살아 숨 쉰다.

책에는 김홍도의 대표작과 희귀 도판을 포함해 100여점의 그림을 삶의 궤적과 나란히 배치해 대화가의 시선으로 그가 남긴 불멸의 작품을 바라보기도 한다.

도성 최고의 번화가인 광통교와 중인들이 모여 살던 삼청동, 딸깍발이 양반들이 사는 남산 기슭을 누비며 관찰한 생동하는 조선의 풍경이 고스란히 그의 풍속화에 들어가 앉고 선배 화원인 김응환과 함께 임금의 명을 받아 영동 9군과 금강산의 절경을 화폭에 담으며 화가로서 자의식을 깨닫는 과정이 『금강사화첩』으로 이어지며 고요하고 쓸쓸한 마음을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정신으로 승화시킨 말년의 모습은 평생의 득의작인 『병진년화첩』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특히 아직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많지 않은 김홍도의 말년도 살펴본다. 전라도 관찰사 심상규가 한양에 있는 벗 예조판서 서용보에게 보낸 편지와 김홍도가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통해 가난과 병고 속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김홍도가 아들에게 초서로 흘려 쓴 편지는 뒤로 갈수록 힘에 부쳐 쓴 글씨라는 게 역력해 말년의 곤궁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존재는 알려졌지만 공개된 적 없는 그 마지막 편지도 책 말미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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