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처럼 기암괴석 이어지는 거대한 수석 전시장…영암 월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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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처럼 기암괴석 이어지는 거대한 수석 전시장…영암 월출산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20.01.2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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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⑫ 천천히 아주 천천히…빠르게 걸을수록 손해
[사진=이경구]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의 위풍당당한 모습. [사진=이경구]

월출산(809m)의 기(氣)에 저릿하게 젖어드는 영암 고을. 순하고 넉넉한 평야에서 홀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월출산의 거대한 암봉은 위엄이 있으며 마루금은 그야말로 비할 바 없는 선경의 지대다.

넉넉한 포용력으로 말없이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은근히 보채는 바람소리까지 다 품어 안아 주는 듯 묵직한 모습에 동화(同化)된다. 산 아래로는 끝없는 너그러움 속에 남도의 안식처 영암과 강진이 있다.

[사진=이경구]
영암 읍내와 기름진 넓은 평야. [사진=이경구]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남해바다와 부딪치면서 솟아오른 화강암으로 몸치장해 오랜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서 월출산이 만들어졌다. 천황봉(天皇峰)을 주봉으로 구정봉, 사자봉, 주지봉 등 많은 봉우리가 바위들로 이루어져 저마다 빼어난 맵시를 뽐내며 기백 있고 당차기 그지없다.

[사진=이경구]
기암괴석이 마치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사진=이경구]

‘달뜨는 산’ 월출산은 80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땅의 기운을 한 데 모아 치받아 오른 위용과 압도감은 숨이 멎는 듯한 감동을 선사받아 가슴 벅참을 느낀다. 그 형상이 신령스러워 풍수지리에서는 일찍부터 기(氣)가 센 산으로 전해져 왔다.

[사진=이경구]
역동적인 능선의 뼈대가 늠름하다. [사진=이경구]

서울에서 월출산까지는 참으로 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용산역에서 KTX로 2시간을 달려 7시50분 나주역에 도착한 후 택시를 탄다. 희뿌연 안개가 타오르는 아침햇살을 받아 벗겨질 쯤 천황사 초입 들머리에 닿는다.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햇빛이 시나브로 스며들며 포실한 대나무 숲길과 동백이 산꾼들을 맞아준다.

[사진=이경구]
구름다리를 거니노니 이곳이 선경(仙境)이다. [사진=이경구]

탐방안내소ㅡ천황사ㅡ구름다리ㅡ바람폭포ㅡ천황봉ㅡ구정봉ㅡ미왕재(억새밭)ㅡ도갑사 코스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월출산의 주능선을 밟는 대표적인 종주 코스로 약 7시간 걸린다.

아담한 절집, 천황사를 지나면서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약 1시간, 해발 604m 높이에 있는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위용을 들어낸다.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건널때는 아찔해 오금이 저릿저릿해 온다.

[사진=이경구]
육형제 바위. 6형제가 마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처럼 보인다. [사진=이경구]

고도가 높아지며 산 아래로 영암읍내와 들판이 열린다. 네모 반듯 아스라이 펼쳐진 평야가 풍요를 예고하고 있다. 구불구불 오르내림을 거듭하는 험준한 산세에 몸을 싣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물상들은 새로운 모습을 들어내며 경연하듯 서로 빼어남을 다툰다.

월출산은 전후좌우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지는 거대한 수석 전시장이요, 산객의 넋을 잃게 만드는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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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암봉이 힘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이경구]

구름다리를 지나 사자봉으로 오르는 철계단은 거의 수직에 가까워 오싹한 전율을 느끼며 때마침 불어온 강풍에 철계단 난간을 붙잡고 집중력을 높혀 한발 한발 내딛는다.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사자봉의 위용에 압도당한다.

[사진=이경구]
[사진=이경구]

한사람이 겨우 빠질 수 있게 열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까지 가풀막은 마지막 힘을 모두 빼앗아 갔다.

드디어 정상. 헐떡거리던 호흡이 저절로 멎었다. 사위는 온통 바위의 바다. 비슷비슷한 모습의 바위들이 천황봉을 중심으로 햇살처럼 펼쳐져 있다. 온갖 자태로 저마다 수려한 모습을 연출하는 기묘한 바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사방으로 어떤 장막도 없다. 영산강의 도도한 물줄기가 나주·영암 일대의 평야를 적시며 목포 앞바다로 빠지는 모습은 거대한 용틀임 같다.

[사진=이경구]
천태 만상의 바위들이 빼곡하다. [사진=이경구]

“참 아름답다”는 말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천황봉을 떠나 바람재까지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돼지바위, 남근바위, 투구바위, 사랑바위 등 사람이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한 바위들이 모여 있어 마치 수석전시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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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봉 정상의 우물. [사진=이경구]

바람재에서 베틀굴을 지나 서북측 급경사를 약 100m 정도 오르면 월출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구정봉(710.9m)이다

구정봉은 월출산의 중앙부다. 조망이나 산세면에서 천황봉에 대적할 만하다. 구정봉은 말 그대로 아홉 개의 우물 정상부 암반에 다양한 크기의 웅덩이가 패여 있다. 이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법이 없다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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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석. 이 바위를 만지고 가면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이경구]

베틀굴을 지나 구정봉에 이르는 길은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우리의 눈을 잠시도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구정봉 바로 밑자락엔 배틀바위가 있는데 이 배틀굴은 여인의 음기가 서려 천황봉 근처 남근석과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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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 [사진=이경구]

마왕재에서 도갑사길은 포근한 흙길이다. 이 길은 억새밭으로 유명하고 계곡을 따라 40분 정도 진행하면 도갑사가 나온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은 맑은 기운이 가득한 곳으로 유명한 도갑사는 월출산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사진=이경구]
천왕봉의 위용. [사진=이경구]

동백나무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하산하는 길이 이토록 정겹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월출산은 그 아름다움을 다른 육산처럼 숨기지 않고 다 벗어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그 아름다움의 감동은 산을 높이 오를수록 커지기 때문에 더 높이 오르는 자만이 차지할 수 있음을 기억한다.

빠르게 걸을수록 손해 보는 월출산 산행.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을수록 좋다. 먼산 능선으로 넘어오는 긴장 풀린 골바람이 앙상한 겨울나무를 흔들고 산객도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사진=이경구]
갈비탕에 낙지가 들어가 있는 독천의 갈낙탕. [사진=이경구]

허기가 몰려온다. 영암에는 전국 유일한 독천낙지거리가 있다. 독천(犢川)의 독(犢)은 송아지라는 뜻이다. 우시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곳은 가까운 바다에서 잡아 올린 낙지로 요리를 하는 특화된 음식거리다. 그중 그린식당은 오랜 전통을 이어온 집. 낙지초무침 4만원.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갈비국물에 산낙지를 살짝 끓여내는 갈낙탕과 낙지연포탕을 차려낸다.

인생길이 언제나 평온한 삶이 아니듯 산길도 늘 한결 같지 않다. 솔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로 가득한 월출산에서 수그린 몸 다시 곧추 세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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