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가는 길손들의 애환 묻힌 곳…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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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가는 길손들의 애환 묻힌 곳…문경새재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20.02.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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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⑮ 한 잔 술로 여독 풀던 주막엔 인적이 없고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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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한 사람 두 사람 걷다 보면 자연스레 길이 된다.”

중국 문학의 아버지 루쉰의 말이다. 그렇게 걷고 걸어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해 서정의 공간을 열어주고 이어주는 문경새재 길.

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문경의 진산으로 불리는 주흘산(1106m)과 백두대간에 위치한 명산 조령산(1026m) 사이에 문경새재 계곡 따라 천혜의 자연경관이 펼쳐지며 마사토와 고운 황토 흙으로 잘 닦여진 길이 문경새재다.

문경새재 길은 약 6.5km로 왕복 4시간 걸리며 흙길이 완만해 전 구간을 맨발로 걷기에도 좋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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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충주시와 이으며 백두대간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고개는 서울로 향하는 영남대로의 길목이었다. 한양으로 가는 영남지방 선비들의 과거길이며 길손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때문에 새재는 선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준한 고개로 억새가 무성해서 새재라고도 했고 새(鳥)도 넘기 힘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황톳길과 더불어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길이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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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한국관광공사 선정 꼭 가봐야 할 포인트 1위에 올라있어 주말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선 태종 때 개척돼 부산에서 한양까지 가는 영남대로는 걸어서 보름 정도 걸리는 고갯길이었다. 서울~부산 최단시간을 KTX로 2시간17분에 가는 현대인과 15일씩 걸려서 가는 조선인의 빠름과 느림의 가치와 행복의 지수는 무엇일까? 문득 어느 쪽이 행복할까 싶은 의문을 던져 본다.

한양 과거길을 오르내리던 영남 선비들은 청운의 꿈을 가지고 문경새재나 추풍령을 넘어 다녔다. 문경새재가 추풍령보다 더 험준했지만 새재길을 넘은 이유는 추풍령의 이름이 ’추풍낙엽‘을 연상시켜 과거의 낙방을 염려했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금기(禁忌) 있는 대목이 재미있다.

문경새재 공원 주차장에서 관광 안내소를 지나면 새재로 오르는 초입에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는 1관문(주흘관, 244m) 성문이 나온다. 조금 더 오르면 관찰사나 현감 등 관리들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碑)가 조금 초라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고 바로 왼쪽에 사극 촬영지로 유명한 문경 오픈세트장이 있어 유료관광 코스로 연계돼 있다.

환한 마사토길 옆으로 계곡엔 저만치 줄달음쳐 가는 맑은 물줄기가 거친 듯 매끈한 듯 세상 시름을 씻어주며 감아 돈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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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적한 지름틀 바위를 지나 돌담만 남아있는 조령원터가 있다. 조령원은 조선시대 출장을 다니던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편의 시설이다. 문경새재 트레킹의 또 다른 매력은 볼거리가 많아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다는 것.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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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르는 길 왼편으론 인적없는 주막이 있고 싸리문을 열며 “주모 주모” 부르던 길손들이 한 잔 술로 여독을 풀고 여럿이 모여 함께 넘어갔을 흔적을 볼 수 있다.

주막을 지나 2km 올라가다 보면 용추폭포의 절경에 자리 잡은 교귀정은 경상관찰사가 새로 부임할 때 떠나는 관찰사와 관인·병부를 인수인계 하던 곳이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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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을 지나 제2관문 못 미쳐 길 오른쪽에 ’산불됴심‘ 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설치된 한글 산림 보호 돌비석이다. 구개음화 이전 표기에 비춰 영·정조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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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관문이라는 뜻의 조곡관(380m) 제2관문을 지나며 문경새재 물 박달나무에 얽힌 민요를 새긴 아리랑비가 세워져 있고 걸음을 재촉해 새재 정상에 오르니 제3관문인 조령관(조령관, 650m)이 조령(鳥嶺) 정상에 우뚝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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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를 일 없는 하산길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상쾌함이 온몸에 전해져 후련하다. 문경새재길은 번잡한 세상일을 떠나 마음이 평온하고 즐거우며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이르는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 딱 어울리는 길이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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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 할매집’은 40년 전통과 명성이 자자한 맛집이다.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부인 공덕귀 여사와 산행을 즐겼다. 마침 문경새재를 들렀다가 처음 먹어본 약돌 돼지고기 양념구이 맛은 이후에도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의 발길을 문경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직접 담근 고추장 소스로 돼지고기의 비린내와 느끼함을 잡고, 잘 버무려 석쇠에 얹어 센 숯불에 그대로 구워내면 기름기까지 빠져 최상의 맛으로 살아난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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