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부모님께 드린 상덕의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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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부모님께 드린 상덕의 효행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2.2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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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23강 효행편(孝行篇) 속(續)…효도를 실천하라②
삼강행실도 효행 편 중에서.
삼강행실도 효행 편 중에서.

[한정주=역사평론가] 尙德은 値年荒癘疫(치년황려역)하여 父母飢病濱死(부모기병빈사)라 尙德(상덕)이 日夜不解衣(일야불해의)하고 盡誠安慰(진성안위)하되 無以爲養則刲髀肉食之(무이위양즉규비육식지)하고 母發癰(모발옹)에 吮之卽瘉(연지즉유)라 王(왕)이 嘉之(가지)하여 賜賚甚厚(사뢰심후)하고 命旌其門(명정기문)하고 立石紀事(입석기사)하니라.

(상덕은 흉년과 전염병이 유행하는 때를 만나 부모님이 굶주리고 병들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상덕은 밤낮으로 옷도 벗지 않고 정성을 다해 부모님의 몸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하였다. 부모님을 봉양할 음식이 없으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고기를 잡수시도록 하였다. 또한 어머니가 종기가 나자 입으로 빨아서 낫게 하였다. 임금이 상덕의 일을 듣고 아름답게 여겨 아주 큰 상을 하사하였다. 그가 사는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우라고 명하고 비석을 세워 상덕의 효행을 기록하게 하였다.)

상덕의 효행은 고려 중기에 활동한 정치가이자 학자인 김부식이 편찬 저술한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열전> 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상덕은 웅천주(熊川州) 판적향(板積鄕) 사람이다. 웅천주는 지금의 충남 공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완성한 지방행정구역인 9주(九州) 가운데 옛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熊津)에 설치한 지방조직이다.

즉 상덕은 통일신라 때 인물로 『명심보감』에 실려 있는 그의 이야기는 경덕왕(景德王) 14년, 다시 말해 서기 755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상덕의 아버지 선(善)은 천성이 온화하고 선량하며 품행이 방정(方正)한 사람이었다. 그 아들인 상덕은 아버지의 성품과 행동을 닮은 데다 효성스럽고 공순하기까지 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크게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서기 755년 흉년과 전염병이 온 나라를 덮쳐 굶주림에 시달릴 때 보여준 효행 덕분에 상덕은 물론이고 그가 살던 마을은 효가리(孝家里)와 넓적다리 살을 베어 피를 흘린 동네 앞개울은 혈흔천(血痕川)이라 불리며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더욱이 상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은 효행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비석이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상덕 외에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늙고 병든 어머니를 봉양한 또 한 명의 효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청주(菁州: 지금의 경남 진주) 출신의 성각(聖覺)이라는 사람이다.

성각의 효행 역시 임금에게 알려져 상덕의 사례와 같이 벼 300석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살을 베어 부모님을 봉양한 상덕과 성각의 효행에 대해 김부식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양면적인 논평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학에서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상하지 않은 일’을 자식이 행해야 할 매우 중요한 효도의 덕목 중 하나로 보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즉 ‘내 몸과 터럭과 살갗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함부로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효도의 시작이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김부식은 유학이 추구하는 효도의 덕목에 위배된다고 볼 수도 있는 상덕과 성각의 이야기를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에 버젓이 기록으로 남겼던 것인가.

그것은 앞서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려고 한 ‘곽거의 효행’이 비록 사람의 도리에는 어긋나지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부모님을 모시려고 한 그 효심만은 높이 사야 한다고 한 사마광의 의견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상덕과 성각의 이야기를 소개한 후 김부식이 남긴 논평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김부식은 이렇게 말한다.

“한유는 ‘병든 부모님을 위해 약을 달여 드리는 것은 효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살을 베어 부모님께 올리는 것은 부모님께 받은 신체를 훼손하고 상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상하게 하는 일이 효도라는 것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참으로 옳다. 그러나 비록 한유의 말이 옳지만 무지렁이 일개 백성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부모님을 봉양한 일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그 역시 칭찬할 만한 일이므로 기록으로 남겨둔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몸을 해치고 상하게 해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비록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효도하는 그 뜻’은 본받아 배워야 하기 때문에 후세의 사표(師表)로 삼기 위해 기록해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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