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하고 욕심 없는 성품으로 판서까지 오른 홍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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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하고 욕심 없는 성품으로 판서까지 오른 홍기섭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2.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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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24강 염의편(廉義篇)…청렴하고 의롭게 살아라②

[한정주=역사평론가] 洪公夔燮(홍공기섭)이 少貧甚無聊(소빈심무료)러니 一日朝(일일조)에 婢兒踊躍(비아용약)하고 獻七兩錢(헌칠양전)하며 曰(왈) 此在鼎中(차재정중)하니 米可數石(미가수석)이요 柴可數駄(시가수태)니 天賜天賜(천사천사)니다 公(공)이 驚曰(경왈) 是何金(시하금)고 卽書失金人推去等字(즉서실금인추거등자)하여 付之門楣而待(부지문미이대)러니 俄而姓劉者來問書意(아이성유자래문서의)어늘 公(공)이 悉言之(공실언지)한대 劉(유)가 曰(왈) 理無失金於人之鼎內(이무실금어인지정내)하니 果天賜也(과천사야)라 盍取之(합취지)닛고 公(공)이 曰(왈) 非語物(비어물)에 何(하)오 有(유)가 府伏曰(부복왈) 小的(소적)이 昨夜(작야)에 爲窃鼎來(위절정래)라가 還憐家勢蕭條而施之(환연가세소조이시지)러니 今感公之廉价(금감공지염개)하고 良心自發(양심자발)하여 誓不更盜(서불갱도)하고 願欲常待(원욕상대)하나니 勿慮取之(물려취지)하소서 公(공)이 卽還金曰(즉환금왈) 汝之爲良則善矣(여지위량즉선의)나 金不可取(금불가취)라 하고 終不受(종불수)러라 後(후)에 公(공)이 爲判書(위판서)하고 其子在龍(기자재룡)이 爲憲宗國舅(위헌종국구)하며 劉亦見信(유역견신)하여 身家大昌(신가대창)하니라.

(홍기섭 공(公)은 젊었을 때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어느날 아침에 어린 계집종이 뛰듯이 기뻐하면서 돈 일곱 냥을 바쳤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돈이 솥 안에 있었습니다. 이 돈이면 쌀이 몇 섬이요, 땔나무가 몇 묶음입니다. 하늘이 내려주신 것입니다. 하늘이 내려주신 것입니다.” 공이 놀라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어찌된 돈인가?” 그리고 즉시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와서 찾아가시오’라는 글을 써서 대문 위에 붙이고 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劉)라는 성(姓)을 가진 사람이 찾아와서 대문 위에 붙여진 글의 뜻을 물었다. 공은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유씨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의 집 솥 안에 돈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과연 하늘이 내려주신 돈입니다. 어찌하여 그 돈을 취하지 않으십니까?” 공이 말하였다. “내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유씨가 무릎을 꿇어 엎드리며 말하였다. “사실 소인이 어제 밤에 솥을 훔치러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너무도 궁색하여 솥 안에 돈을 넣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지금 공의 청렴하고 욕심 없는 성품에 감동을 받아서 제 양심이 저절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앞으로 항상 곁에서 공을 모시고 싶습니다. 이 돈은 염려하지 마시고 받아주십시오.” 공이 즉시 유씨에게 돈을 돌려주면서 말하였다. “그대가 양심이 움직여서 선량한 사람이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공은 끝내 유씨의 돈을 받지 않았다. 훗날 공은 판서가 되었고, 그 아들 재룡은 헌종의 국구(國舅: 장인)가 되었다. 유씨 역시 신임을 얻어 그 몸과 집안이 크게 번창하였다.)

홍기섭은 조선 말기 순조 때 활동한 문신(文臣)이다. 그는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 태어나 1831년(순조 31년) 나이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1802년(순조 2년) 나이 27세 때 과거에 급제한 후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 예조판서, 공조판서 등의 고위 관직을 두루 거치며 크게 현달한 인물이다.

특히 홍기섭의 손녀는 헌종의 계비(繼妃: 명헌왕후(明憲王后)가 되고 그의 아들 홍재룡은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이 되어 그 집안 또한 큰 권세와 명예를 누렸다.

『명심보감』 제24강 ‘염의(廉義)’ 편에 홍기섭의 이야기를 실어놓은 까닭은 ‘염(廉)’과 ‘의(義)’ 가운데에서 특히 ‘염(廉)’, 즉 ‘청렴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즉 홍기섭은 청렴한 성품 덕분에 예조판서의 고위 관직에까지 이르렀고, 그의 아들 홍재룡은 임금의 장인인 부원군이라는 고귀한 지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홍기섭의 ‘청렴함’에 감동을 받은 도둑 유씨는 오늘에야 비로소 존경할 만한 양반을 만났다면서 스스로 그 집안의 하인이 되기를 청했다고 한다.

훗날 홍기섭이 크게 출세하고 그 집안이 큰 권세와 명예를 얻게 된 것처럼 도둑 유씨 역시 많은 덕을 쌓아 ‘유군자(劉君子)’라고 불리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큰 찬사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홍기섭과 도둑 유씨가 개인은 물론이고 그 집안까지 세상에 이름을 높이 알릴 수 있었던 까닭은 모두 ‘청렴함’ 때문이었다는 것이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전하려고 하는 뜻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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