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탑의 맑고 순수한 우정
상태바
백탑의 맑고 순수한 우정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4.24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무 詩의 온도]⑪ 영변부에 유람 간 박제가에게 부치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서울 종로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이절도사 집 노란 몽고말을                            李節度家黃韃馬
달밤 술 취해 안장 없이 올라탔네                      月中乘醉無鞍騎
철교는 발굽 앞에 우뚝우뚝 나타나고                   鐵橋矗矗蹄前出
백탑은 눈 아래 어른어른 옮겨가네                     白塔迤迤眼底移
다른 사람 어찌 호방한 기상 의협심 많냐 하지만        人道何多遊俠氣
스스로 오히려 고상한 선비 자태 잃었다며 부끄러워하네 自慚還失雅儒姿
먼 곳에서 생각하건대 홀로 『초정집』 펼쳐놓고서      遙知獨展楚亭集
관서(關西)의 꽃 같은 여인 품지는 않으리              不挾西州花樣姬

초정(楚亭) 박제가는 항상 장인 이병사(李兵使)의 말을 타고 다녔다. 달밤에 안장도 없이 말을 달려서 강산 이서구를 찾곤 했다. 술이 깨면 곧바로 후회하며 “형암(이덕무)이 알까 두렵다”고 말하곤 했다.
『아정유고 1』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는 박지원, 서상수, 유금,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과 함께 백탑시사(白塔詩社)라는 시문학동인을 맺어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

백탑시사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이들이 백탑이라고 불린 원각사지 10층 석탑(현재 탑골공원 소재) 주변에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과 북촌 일대다.

그런데 여기 이덕무의 시를 읽으면 불현듯 박제가의 산문 ‘백탑청연집서(白塔淸緣集序)’가 겹쳐 떠오른다. ‘백탑의 맑은 인연’이라는 제목만큼 이들의 순수한 우정을 엿볼 수 있는 시와 산문이다.

이덕무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박제가는 달밤에 말을 타고 밤새도록 철교와 백탑을 오가며 벗들을 찾아 술 마시고 시를 지으며 놀았나 보다. 신혼 첫날밤에 아내를 홀로 남겨둔 채 장인의 건장한 말을 타고 벗을 찾아다닐 정도였으니까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덕무의 사립문이 백탑의 북쪽에 마주 대하고 있었고 이서구의 사랑이 그 서쪽에 우뚝 솟아 있었다. 또한 수십 걸음 가다 보면 서상수의 서재가 있고, 북동쪽으로 꺾어져서는 유금과 유득공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한번 그곳을 찾아가면 집에 돌아가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열흘이고 한 달이고 머물러 지냈다.

서로 지어 읽은 글들이 한 질의 책을 만들 정도가 되었고, 술과 음식을 구하면 꼬박 밤을 새우곤 했다. 내가 아내를 맞이하던 날 저녁에도 처가의 건장한 말을 가져다 안장을 벗기고 올라타고서 시동 한 명만 따르게 하고 홀로 바깥으로 나왔다.

그날은 마침 달빛이 길에 가득했는데 이현궁 앞을 지나 말을 채찍질해 서쪽으로 내달렸다. 이윽고 철교의 주막에 이르러 술을 마시고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린 후 여러 벗들이 집에 들렀다가 백탑을 빙 돌아 나왔다.

그때 호사가들은 이 일을 두고 왕양명이 철주관 도인을 찾아가 돌아오는 것조차 잊었던 일에 빚대어 말하곤 했다.”

이 정도의 우정이라야 진정한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